[현장기자] 홍수피해 조사 용두사미 안되려면

입력 2020-09-27 15:20
최재필 국민일보 사회부 기자.

2011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폭우와 강풍이 휩쓸고 간 처참한 수해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반세기 만의 폭우로 당시 방콕 1000만 시민에게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시내 곳곳이 물에 잠기고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태국의 여러 지인은 “방콕은 몇십 년 후 물에 완전히 잠길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대책이 없냐’는 질문엔 한 명도 답하지 못했다. 이후 태국 정부는 ‘종합물관리사업’ ‘통합물관리시스템’ 등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2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수피해의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여름 우리나라도 역대 최장기간 장마(54일간)로 인한 홍수피해를 겪었다. 8000여명의 이재민과 40여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섬진강댐 인근 지역 등에서는 댐 방류량 조절 실패가 수해를 키웠다고 항의했다. 환경부는 집중호우에 댐 운영이 적정했는지 조사할 ‘댐관리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조사에 착수했다. 귀책 사유가 발견되면 형사처벌 등 법적 조치를 한다고도 했다. 대상은 환경부 소속·산하기관인 홍수통제소와 한국수자원공사다.
2011년 11월 태국 방콕은 반세기 만의 폭우로 인해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겼고 도로에는 차가 다니지 못했다. 사진은 당시 기자가 촬영한 방콕 현지 모습.

문제는 이번 조사가 ‘댐관리 운영의 적정성’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섬진강·낙동강 제방이 무너지고 하천이 범람한 원인은 ‘댐관리 운영상 문제’ O·X 퀴즈로 끝날 게 불 보듯 뻔하다. 자의든 타의든 무너진 제방 관리 주체인 국토교통부는 ‘강 건너 불구경’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한하천학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제방이 붕괴하고 홍수피해를 키운 주된 요인은 파이핑 현상(댐 하부나 측부에 구멍이 생겨 물이 흘러나가는 현상) 때문”이라고 했다. 국토부의 하천 시설물 정비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수위를 조절하고 수문을 개방하는 권한은 환경부와 홍수통제소·수자원공사에 있지만 물관리 시설별 관리 주체는 국토부와 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행정안전부 등이 얽혀 있다. 대규모 홍수피해 원인을 ‘댐관리 운영의 적정성’에서만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인 이유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통합물관리 정책’은 결국 태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 자명하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의 주장처럼 총리실 주도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사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어렵게 시작한 이번 조사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길 바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