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담당 공무원의 요구에 따라 직접 만든 제품이 아닌 다른 회사의 제품을 구매해 납품한 경우, 중소기업중앙회가 “직접생산 업체라는 확인증명을 취소한다”고 처분한 것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계약과 다른 내용을 강요받았다면 이를 신고했어야 한다며 업체 측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는 CCTV 제조업체인 A사가 중소기업중앙회를 상대로 “직접생산확인(증명)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직접생산 확인은 공공기관이 조달계약을 맺을 때 중소기업이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지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제조 능력이 없는 업체가 다른 업체에 하청을 주고 수수료만 받거나 일부 부품만 생산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다.
중소기업인 A사는 2016년 조달청이 발주한 충북 한 군청의 CCTV 구매·설치 사업을 낙찰 받았다. 그런데 이 군청의 담당 공무원은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이 돼야 한다”며 자신이 소개하는 업체에서 완제품을 구매해 납품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은 2018년 이 같은 비리를 파악해 담당 공무원을 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고 A사 등 관련 업체들의 법 위반 사실을 중소벤처기업부에 통보했다. 그러자 중기중앙회는 2019년 7월 A사가 직접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접생산 증명을 취소했다. 이에 A사는 “담당 공무원이 타사 제품을 구매해 납품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신뢰하게 만들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계약 체결 이후 수요기관이 타 업체가 생산한 제품의 납품을 요구했더라도 조달청과의 계약 내용대로 이행할 것을 제안했어야 한다”며 A사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일 (A사 주장대로) 강요가 있었다면 이를 조달청에 고지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사가 조달청과 맺은 계약은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성격이 있어 군청은 수익자에 불과하다”며 “정부 조달계약이 거치는 엄격한 절차와 투명성, 공정성 요구에 비춰보면 군청이 계약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