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낡은 유모차 위에 폐지를 가득 싣고 도로를 걷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걷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폐지가 쏟아질 것 같은데요.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연일까요.
지난 23일 강원 철원군 통합관제센터 직원은 주민 안전을 점검하기 위해 CCTV를 모니터링했습니다. 이날 오후 5시쯤 동송읍 버스터미널 앞 도로에 한 할머니가 등장했습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본인 키보다 높은 폐지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직원은 경찰에게 곧장 연락했습니다. 할머니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죠.
경찰을 기다리던 직원은 CCTV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먼저 한 무리의 군인들이 할머니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들은 높이 쌓인 폐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붙들고 할머니와 동행했습니다.
군인들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돼 이번엔 한 명의 여성이 다가왔습니다. 이 여성 역시 할머니와 폐지를 함께 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녀가 떠난 뒤엔 책가방을 멘 남학생이 나타났죠. 남학생도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유모차를 대신 밀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단 10분 만에 이뤄졌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3명이 넘는 청년이 먼저 다가와서 할머니를 도운 겁니다. 할머니는 시민들의 도움과 경찰의 안내로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철원군청 직원은 가슴이 뭉클했다고 합니다. 그는 코로나19로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어르신을 위해 사람들이 돕는 것을 보고 마음 따스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달려온 남학생은 중학교 2학년 김기주군이었습니다. 겉보기에도 앳된 모습에 그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차도로 너무 위험하게 다니셔서 할머니가 사고 날 것 같았어요”
“위험하다 생각해서 (고민 없이) 바로 달려가서 할머니를 도와드렸어요”
‘고민 없이 달려갔다’는 인상 깊은 말은 대중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위해 바로 달려갔다는 10대 소년의 말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이웃 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가 이어지는 시대에 이들 3인방의 선행은 우리 사회의 온정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아직 살 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지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