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불이 나 중태에 빠졌던 초등학생 형제 가운데 형이 사고 발생 12일 만에 눈을 떴다. 동생도 눈을 떴지만 형과 달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4일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빌라 화재로 크게 다친 초등생 A(10)군과 B(8)군 형제는 서울 모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온몸의 40%에 이르는 심한 3도 화상을 입고 치료 중인 형 A군은 25일 처음 눈을 떴다. 의료진이나 가족이 이름을 부르면 눈을 깜박이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1도 화상을 입은 동생 B군도 형처럼 눈은 떴지만 이름을 불러도 반응은 없는 상태다. 이들은 사고 후 화상뿐 아니라 유독가스를 많이 흡입해 자가호흡이 힘든 상태여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형제 모두 말을 하진 못해 완전히 의식을 찾았다고 보긴 힘들다”며 “그나마 형은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1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상을 입었다. A군은 안방 침대 위 아동용 텐트 안에서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됐고 B군은 침대와 맞닿은 책상 아래 좁은 공간에 있다가 다리 등에 화상을 입었다.
형인 A군이 동생 B군을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몸을 피하게 하고 자신은 화재로 인한 연기를 피해 텐트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동생이 피한 책상 아래엔 이불이 둘러싸여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방 관계자는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을 구하려 방어벽을 친 것 같다”고 했다. 미추홀구청 관계자도 “불길이 번지자 큰 아이는 곧바로 동생을 감싸 안았고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둘째는 형 덕분에 상반신은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다리 부위에 1도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의 여파로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던 중 엄마가 외출한 사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형제의 엄마 C(10)씨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 160만원가량을 지원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A군 형제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뒤 이들을 돕겠다는 후원 문의가 전국에서 잇따랐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