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 부당 사용 의혹에 ‘교황청 최고위 추기경’ 사실상 해임

입력 2020-09-26 04:55 수정 2020-09-26 09:41
바티칸 교황청은 24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의 사임 의사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교황청 최고위급 추기경이 ‘베드로 성금’(신자들의 성금이나 기부로 조성된 자선기금) 유용 의혹으로 전격 사임했다. 해당 추기경은 이례적으로 추기경 권한까지 포기했다. 사실상 해임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교황청은 현지시각으로 24일 밤 죠반니 안젤로 베추(72·이탈리아) 추기경이 시성성 장관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베추 추기경은 교황 선출 투표권 등 추기경 권한도 포기했다. 교황청 규정상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콘클라베를 통한 교황 선출 과정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는 교황청의 심장부로 불리는 국무원에서도 요직인 국무부장을 지낸 뒤 2018년 5월부터 순교·증거자의 시복·시성을 담당하는 시성성 장관으로 일해왔다. 교황청은 베추 추기경의 사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례적으로 추기경 권한까지 포기한 점에 비춰 꽤 심각한 비리 혐의에 따른 징계성 사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교황이 베추 추기경을 해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추기경이 권한을 포기한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13년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과 2018년 테오도르 맥캐릭 추기경 정도다. 둘 다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와 관련해 베추 추기경은 25일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리 혐의를 이유로 자신을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고 밝혔다. 교황이 전날 저녁 자신을 불러 베드로 성금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내용의 수사기관 보고를 언급하며 ‘당신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교황이 지적한 사안에 대해 그는 친형제가 이탈리아 사르데냐주에서 운영하는 자선단체를 후원하고자 2017년 관할 교구에 베드로 성금 10만 유로(약 1억3600만원)를 제공했다고 스스로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교구에 자금을 준 것은 맞지만 이 돈은 여전히 교구가 관리하는 은행 계좌에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문제의 자선단체가 이탈리아주교회의(CEI)에서 60만 유로(약 8억2000만원)를 기부받았다는 이탈리아 현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자신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다만 베추 추기경은 2001∼2011년 사이 앙골라와 쿠바 주재 교황청 대사로 근무할 당시 목공 사업을 하는 또 다른 형제에게 대사관 보수공사 관련 일감을 준 적은 있다고 시인했다. 이 역시 부적절하지 않다는 상급자의 판단에 따라 의혹이 해소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베추 추기경은 “어제(24일) 오후 6시 2분까지만해도 나는 교황의 벗이자 충직한 부하였다”면서 “말문이 막힌다. 이 모든 게 나에게는 비현실적”이라고 하소연했다. “제기된 의혹은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든 것을 교황에게 설명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베추 추기경은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앞서 베추 추기경은 국무원이 주도한 부동산 매매 의혹에서도 책임론이 제기됐었다. 바티칸 경찰은 국무원이 2014년쯤 교회 기금 200만달러(현재 환율로 약 23억4000만원)를 들여 영국 런던 첼시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하고서 고급 아파트로 개조한 일과 관련해 작년 10월부터 자금 사용의 불법성 등을 수사해왔다. 이는 베추 추기경이 국무부장으로 있던 때 발생한 사건이다.

교황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고 교황청의 살림살이까지 책임지는 국무부장의 막중한 역할과 권한에 비춰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세도 베추 추기경은 “잘못한 게 없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