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47)가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 어업지도선에서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행적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군과 경찰 등 관계기관은 여러 첩보와 실종 당시 정황을 토대로 A씨가 자진월북을 시도하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월북을 암시하는 ‘사전 징후’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문은 계속된다. 결국 A씨의 마지막 행적들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따라 ‘자진 월북’인지 ‘사고’인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5일 해경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1일 0시35분 당직근무를 서던 무궁화10호 조타실을 이탈해 개인 노트북을 사용했다. A씨는 노트북에 로그인한 후 간단한 서류작업을 했으며 인터넷 검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는 “A씨가 당직근무를 서다 잠시 서류작업을 한다고 말하고 조타실에서 나갔다”고 진술한 바 있다. 정상적으로 당직 근무를 하던 중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업지도원들이 당직 근무 중 졸음을 이겨내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종종 있는 일로 전해졌다. 해경은 “같은 날(21일) 11시 30분께 점심식사를 하지 않아 침실, 선박 전체, 인근 해상을 수색하였으나 발견하지 못해 12시 51분께 신고했다”고 보고했다.
해경은 24일에 이어 이틀째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와 승선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A씨의 최근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통화내역 등을 확인 중이다. 해경은 전날 무궁화10호에서 A씨의 개인수첩 등을 확보했다. A씨는 평소 채무로 상당히 힘들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A씨의 행적이 채무와 관련이 있는 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24일 조사에서 A씨가 자진 월북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실종 당시 신발이 선상에 남겨진 점,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평소 채무 등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점, 국방부 첩보 등을 들어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A씨의 동료들과 유가족은 월북 가능성을 일축했다. 동료들은 A씨로부터 월북과 관련한 이야기나 북한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말은 듣지 못했으며, 청소도 솔선해서 먼저하고 부지런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유가족은 A씨가 공무원증을 남겨두고 갔다는 점에서 월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월북 의사가 있었다면 북한군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공무원증을 챙겨갔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다만 선박 우현 선미 쪽에 A씨 신발이 남아 있어 ‘단순 실족’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A씨가 승선한 어업지도선내 CCTV가 출항 당시에는 정상 작동됐으나 도중에 고장이 난 점도 의문이다. 서해어업관리단 상황실장 B씨는 “16일 출항 당시 정상 작동되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의 CCTV가 항해 중 고장난 원인을 알 수 없다”며 “현재 해경에서 고장 시점이나 원인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선내 CCTV가 정상작동 중 자연 고장났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훼손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경은 지난 21일 12시 50분쯤 서해어업관리단으로부터 공무원 1명이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수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A씨의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어업지도선 내 CCTV를 점검했으나 2대 모두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아 A씨의 정확한 동선 파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휴대전화나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문을 키우고 있다. 월북 의사가 확실했다면 A씨가 유서를 남겼거나 휴대전화를 두고 갔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적을 숨기기 위해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군 당국은 전날 선박에 신발을 벗어놓은 점 외에 A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진술한 정황이 있고 북측에 발견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소형 부유물’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자진 월북 시도의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이런 판단은 북한 통신신호 감청정보(시긴트·SIGINT) 등 여러 첩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명조끼 착용은 선박 근무 인원의 평시 복장이어서 월북 의도 정황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해수부 관계자도 “(어업지도원들은) 통상적으로 입출항이나 승선조사 할 때는 (구명조끼를) 반드시 착용을 하고, 휴식시간에는 착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가 표명했다는 ‘월북 진술’ 역시 A씨가 실제로 말한 녹취를 확인한 것이 아니고 북한군의 상부 보고 등 첩보로 간접 확인한 정황에 지나지 않는다. A씨가 이용한 소형 부유물 역시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닌 감청정보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정확히 무엇인지 군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고로 가까스로 부유물에 의지해 표류하던 A씨가 북측 해역임을 인지하고 순간적으로 북한군에 허위로 월북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이 확보한 감청정보는 대부분 북한군 내부 보고이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현재로선 규명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