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FC 서울이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강등 전쟁이 벌어지는 파이널 라운드를 불과 이틀 앞두고 김호영(50) 감독대행이 사임하면서 올 시즌에만 두 번째로 사령탑이 물러났다. 당장 다음 경기인 26일 수원 삼성과의 라이벌전부터 걱정을 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들 정신없었던 올 시즌이지만 서울은 내부 실책으로 유독 더한 고난을 겪고 있다.
프런트 실책에 시작부터 ‘삐걱’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의 부진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난 시즌 혼란 와중에도 팀을 다잡아 리그 3위를 사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지켜낸 최용수 감독이 팀을 맡고 있었기에 팬들의 믿음도 두터웠다. 개막전에서 강원 FC에 일격을 당했으나 이어진 광주 FC와 난적 포항 스틸러스에게 연승을 거둘 때까지만 해도 이 믿음은 유효한 듯했다.문제는 애먼 데서 터졌다. 광주전에서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설치한 괴인형들이 발단이었다. 성인용품인 이른바 ‘리얼돌’이 아니냐는 팬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구단은 인형 설치 업체의 설명을 그대로 전달해 이를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국민일보 취재로 해당 업체가 성인용품 제작업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5월 18일 <관중 대신 리얼돌? 상암에 등장한 ‘괴인형’ 진실은> 참조). 결국 사실관계가 드러난 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구단에 역대 최고 수준인 1억원 징계를 내렸다. 구단이 별 노력 없이 손쉽게 ‘코로나19 마케팅’을 하려다 난 사단이었다.
팀의 부진도 시기를 같이했다. 성남 FC에게 진 것을 시작으로 7월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 무승부로 기사회생하기까지 6연패 했다. 특히 대구 FC에게 당한 6대 0 패배는 구단 역사에 남을 수치스러운 경기였다. 결국 최용수 감독은 8월이 되기 전 자진사임 하며 정든 구단을 떠났다. 성적에 책임을 지는 게 프로 감독으로서 당연한 일이라지만 그간 부진을 감독만의 잘못이라 치부하기 어려웠기에 뒷모습이 더 씁쓸했다. 1월부터 터진 ‘기성용 사가’에 리얼돌 사태 등 경기 외적으로 팀 분위기를 뒤흔든 건 무엇보다 구단 운영진이었다.
배드엔딩으로 끝난 김호영 체제
구단에 따르면 김호영 감독대행의 사임 이유는 감독 임명을 둘러싼 마찰이었다. 서울 구단 관계자는 “지난 22일 김 감독대행의 요청으로 구단 운영진과 면담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 감독대행이 24일까지 결정을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감독대행을 맡은 뒤 분위기 반전을 이뤄낸 공도 있을뿐더러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 선수단의 신임을 얻어내려는 목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구단 관계자는 “애초 구단은 리그가 막바지에 접어드는 10월까지는 일단 감독대행 체제를 유지하고 이후 리그 종료에 맞춰 감독 선임을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이후 정식 감독이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지휘하는 일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감독 선임이 너무 이르다고 판단한 구단은 김호영 감독대행에게 회신을 주지 않았고 김 감독대행은 구단이 감독 선임 의사가 없다고 판단, 사임을 강행했다.
문제는 서울 구단이 별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 감독대행이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내버려 뒀다는 점이다. 구단 운명이 달린 파이널 라운드를 불과 이틀 앞두고 선수단이 다시 한번 경기 외적인 변수에 흔들리도록 방치한 셈이다. 더군다나 다음 경기는 자존심이 걸린 수원과의 라이벌전이다. 중요 경기를 앞두고 사임을 결정한 김 감독대행도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그가 사임하기까지 상황을 통제 못한 구단이 우선적인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단 관계자는 “김 감독대행이 최후통첩을 했던 것은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갑자기 사임을 결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대행 사임이 발표된 이후에도 이날 한동안 서울 구단 홈페이지의 코치진 소개란에는 그의 프로필이 남아있었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전개됐는지를 알 수 있는 일면이다.
이번 사태는 구단 운영진이 상황을 통제 못했다는 점에서 지난 1월 기성용의 국내 복귀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단과도 닮아있다. 당시도 서울 구단은 선수와의 마찰 끝에 결국 협상을 파국으로 끝맺으며 구단 안팎의 여론을 최악까지 몰고 갔다. 이번에는 심지어 구단에 몸담은 내부 인물의 의도나 행동방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사령탑 공백을 맞았다는 점에서 더욱 팬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누가 해도 초보운전…암담한 ‘파이널 슈퍼매치’
남은 5라운드에서 여느 때보다 노련한 운영이 필요하지만 감독대행 후보군은 달랑 3명뿐이다. 현재 골키퍼 코치와 피트니스 코치 등을 제외하면 감독대행이 될 법한 서울의 코치는 박혁순과 이정열, 김진규다. 박혁순의 경우 지난해에야 성인팀 코치로 승격했고, 이정열은 서울에 오기 전에는 2018년과 지난해 경남 FC에서 김종부 감독을 보좌했던 게 성인팀 지도 경력의 전부다. 이번 시즌 중도 합류한 김진규 역시 성인팀 코치는 이번 시즌이 처음이다.
서울 구단 운영진은 이날 오후 회의에 돌입했으나 이들 3인 중 누가 감독대행을 맡을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다. 현시점에서는 경기 당일인 26일까지 감독대행이 정해질지도 확실치 않다. 다만 감독대행 임명 없이도 리그 경기를 치르는 건 가능하다. 연맹 관계자는 “리그 규정상 구단이 감독대행을 임명하지 않더라도 경기를 치르기 전 코치진 중 하나를 경기에 등록하면 된다”면서 “구단이 해당자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하느냐 마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서울이 상대해야 할 맞수 수원은 최근 박건하 감독 부임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정규 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지난 강원 FC와의 경기에서 파이널A 사수에 필사적이던 상대를 몰아붙여 1대 2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정규리그 종료 시점에서 서울이 아직 파이널B 선두라고는 하지만 꼴찌 인천과의 승점 차도 7점에 불과하다. 수원전에서 패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다면 산술적으로 강등까지 미끄러지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6년 넘게 패한 적이 없다지만 그만큼이나 수원이 이번 기회를 맞아 설욕을 노리는 것도 당연지사다.
리그 종료까지 약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이 새 감독을 그 안에 임명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감독대행을 하던 인물이 중도 사퇴한 상황에 선뜻 손을 들 후보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서울 구단 관계자는 “김 감독대행 이외에도 신임감독 선임을 준비하면서 물색해놓은 후보군이 있다”면서도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선수단은 여러 모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