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불을 끄고 모니터를 켰다. ‘콘텐츠를 불러올 수 없다’는 문구만 떠 있던 화면에 약속한 오후 7시30분이 되자 연극 한 편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대 풀샷은 물론 배우 움직임을 따라가는 영상이 생생했다. 이어폰에서는 배우들의 숨소리도 느껴졌다. 원한다면 연극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자막 유무를 조정할 수도 있었다.
25~26일 본공연에 앞서 23일 시사회로 공개된 이 연극은 국립극단 ‘불꽃놀이’(작 김민정). 당초 6월 18일부터 소극장 판에 오를 예정이던 ‘하지맞이 놀굿풀굿’ 프로그램의 하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온라인에서 선보이게 됐다. 국립극단이 이처럼 신작을 온라인에서 개막하는 것은 창단 70년 이래 최초인데 2500원의 유료 티켓임에도 이미 500장가량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 종교제의 ‘굿’을 소재로 한 연극은 20살 친구들끼리 떠난 여행에서 교통사고로 모두를 잃은 희수의 이야기다. 열 명이 죽고 한 명은 의식불명인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은 희수는 나이가 들어서도 “잘 수도 먹을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영혼을 위로하는 일종의 씻김굿이 모티브이지만 청춘들의 이야기와 우주물리학 등을 서사에 녹여 현대적으로 풀어낸 독특한 작품이다.
앞서 전통연희를 접목한 작품들로 박수받은 남인우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겸 상임연출가가 연출한 ‘불꽃놀이’는 감동적인 시나리오로 개발 단계부터 호평받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국립극단이 시도하는 ‘온라인 극장’의 포문을 여는 작품이기에 관심은 더 불이 붙었다.
국립극단은 이 공연을 시작으로 온라인 극장을 명동예술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에 이은 네 번째 극장으로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서울예술단 등이 유료 후원리워드 기능이 마련된 네이버TV에서 유료 공연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 이유도 관객 취향과 관람 패턴 등 자체 DB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말 촬영본을 편집해 선보인 이날 공연은 온라인 공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프로시니엄이 아닌 정방형으로 구현된 무대 곳곳을 누비는 영상은 생동감을 더했다. 남 연출가는 현장 카메라 위치·시점을 정하고 촬영본을 편집하는 과정에도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가 안 들리면 자막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도 몰입을 도운 요소였다.
다만 천장을 수놓는 폭죽신 등 장면을 필요에 따라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는 국립극단 관람팁에 맞춰 환경을 어둡게 하고 큰 모니터와 이어폰을 활용하는 게 최선의 대안으로 보인다. 이들은 향후 공연 풀샷 버전과 카메라 워킹 버전을 관객이 사전 선택하도록 하는 등 관람 옵션을 다원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래도 감동은 묵직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호연 덕분이다. 특히 이 극에서 삶과 죽음이 혼재한 공간으로 표현되는 ‘우주’는 비극을 희망으로 전복하는 핵심 장치다. 죽은 친구들은 별이 되고, 코마 상태의 세영은 우주를 부유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별이 합쳐진 블랙홀, 그 블랙홀 두 개가 붙어 만들어진 ‘웜홀’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한다. 죽음과 시작이 맞닿는 웜홀에서 희수는 비로소 과거의 나, 친구들과 대면하고 그들을 떠나보낸다. 진혼곡 외피를 쓴 ‘불꽃놀이’는 사실 과거를 긍정하고 나아가는 법을 말하는 극이기에 남은 이들을 향한 치유극이다. 극 말미 “불꽃놀이가 너무 짧았다”며 아쉬워하는 희수와 세영은 이렇게 말한다.
“저기 멀리 있는 점 보여? 반짝이는 불꽃. 금방 사라질 거야. 그렇다고 없었던 건 아냐. 그래도 아름다웠지?”(세영) “가장 아름다웠지.”(희수)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