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은 지난 7월 개성 출신 탈북민 김모(24)씨가 서해를 통해 재월북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전방 부대를 중심으로 초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며 국경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월북자가 발생하자 경계 실패 책임을 물어 전방 부대를 가혹하게 처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A씨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표류하자 당시 현장에 있던 북한군 병력은 본인들에게 내려질 처벌이 두려워 초강경 대응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김씨 월북 사건 당시 황해도 지역 전방 주둔 부대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씨가 북한 지역으로 넘어가고 닷새 동안 개성 지역을 돌아다녔음에도 이를 탐지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열렸던 노동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보도문에도 이런 정황이 나타나 있다. 보도문은 “회의에서는 월남도주사건이 발생한 해당 지역 전연부대의 허술한 전선 경계 근무실태를 엄중히 지적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사건 발생에 책임이 있는 부대에 대한 집중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엄중한 처벌을 적용하며 해당한 대책을 강구할 데 대해 토의했다”고 적시한 바 있다.
북한 관영 매체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도 비슷한 시기 재월북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탈북민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두만강을 헤엄쳐 북·중 접경 지역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가 북한 당국 조사에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도강했다”고 진술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경계를 섰던 부대 병력 1개 중대가 통째로 해산 조치됐다는 것이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RFA에 “최고사령관(김 위원장)이 전군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부대 해산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중대장 이하 중대 지휘관들은 근무태만을 이유로 10년 이상 노동교화형 처벌을 받았으며 지휘관의 가족들까지 교화소로 보내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의 초강경 방역 조치에 더해 전방 부대에 강력한 처벌이 잇달아 내려지면서 어업지도선 선원을 포착한 북한군 병력도 경직된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자신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북한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북한이 우리 국민을 별다른 보호 조치 없이 곧바로 사살한 것은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가 힘들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을 떠났던 박왕자 씨를 북한군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곧바로 조준 사격해 사살한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4일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차단하고 접근 금지를 명하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으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월경 과정이 어떻든 간에 우선 신병을 확보한 후 우리 측에 알리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데 대해서는 공분을 살 수 있다”며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