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증인석서 변호인 조언 받는 날 올까… ‘정경심 재판’의 질문

입력 2020-09-24 10:32 수정 2020-09-24 10:44
정경심 동양대 교수

피의자 신분에 있는 사람이 검찰 조사실이 아닌 법정 증인석에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을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공판을 통해 불거진 논쟁거리다. 그간 형사재판에서 이런 질문이 제기된 적은 거의 없었다. 이는 정 교수 공판의 증인으로 나왔던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측이 “피의자인 증인의 변호인 조력권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공론화됐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한 원장 측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원장 측 변호를 맡았던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지난 22일 헌법재판소에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의 임정엽 재판장이 한 원장의 증인신문에서 변호인의 참여를 거부한 행위는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 청구서에는 소송당사자의 증인신문 참여권과 변호인의 참여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163조와 243조의2에 피의자 신분인 증인이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절차가 없는 것은 위헌이라는 입장도 담겼다.

한 원장 측은 지난 7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정 교수 공판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원장은 당시 정 교수 딸 조모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허위 인턴 의혹에 대한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한 원장을 이 사건 관련 피의자로 조사한 뒤 아직 기소나 불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 원장은 당시 “저처럼 피의자이자 증인인 경우 법정이 검찰 조사실의 연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항변했다. 피의자 신분인 채로 자칫 잘못 증언했다가 공소제기 등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장인 임 부장판사는 “관련 형사소송법 또는 규칙 조항이 없다”며 한 원장 측 주장을 기각했다.

한 원장 측은 이 기각 결정으로 헌법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입장이다. 양 변호사는 “피의자 신분에 있는 사람이 증인으로 소환될 경우, 증언 의무가 있는 증인 지위로 인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이 취약해진다”고 말했다.

물론 형사소송법은 법정진술 때문에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 증언거부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도 증인은 검찰의 신문사항을 일일이 듣고 증언거부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 일체의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검찰 조사와 달리 증인신문 때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증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양 변호사는 “증인 스스로 짧은 시간 안에 검찰의 신문내용을 듣고 즉석에서 판단하다 보면 불이익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잠정적인 피고인으로서 답변거부권을 고지 받은 증인에게도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문도 참고자료로 제시했다.

이 같은 주장은 법조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다가 정 교수 재판을 계기로 불거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고위층 재판을 통해 형사소송 절차의 발전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찬반 입장은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증인신문은 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증인의 기억을 묻는 절차”라며 “변호인이 옆에 있으면 증언이 오염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처벌 우려가 있을 때를 대비해 증언거부권을 보장하고 있고, 더욱이 피의자 신분이면 재판부도 당연히 감안할 수밖에 없다”며 “한 원장 측 주장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게 되면 무작정 증언거부권 행사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며 “오히려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증인신문의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술이 오염된다는 우려는 기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증인신문 도중 변호인의 위법한 조력행위가 있으면 재판장이 적절히 제지할 수 있고, 사전에 변호인의 참여를 전면적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