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무슨 흥신소냐” 정치 공세로 전락한 고소·고발

입력 2020-09-23 17:51 수정 2020-09-23 17:54


“‘기승전 고발’이다. 이번에도 등장인물 모두가 피고발인 신분이 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무이탈 등 의혹을 제기했던 군 관계자들이 검찰에 고발되자 한 검찰 간부는 23일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진영을 대변한 ‘쌍방 고발’은 최근 주목된 검찰 수사들에서 예외 없이 반복됐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후원금 유용 의혹 사건,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입시비리 의혹 사건 등에서 양 진영이 검찰을 가운데 두고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검찰 내부에서는 진영논리 성격의 남(濫)고소·고발 경향이 점점 짙어진다고 보는 편이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갈등들도 검찰 앞에 던져진다는 것이다. 정쟁을 떠안아 살피는 도중 민생 사건에 투입될 수사력은 적어진다. ‘범 정치권’인 시민단체들의 고발이 실제 유의미한 기소로 이어지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남고소·고발 경향이 모두가 원하는 검찰개혁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많다. 한 현직 검사장은 “입으로는 검찰개혁을 말하면서 손으로는 검찰에 먹잇감을 던지는 격 아니냐”고 말했다. 비대한 검찰권을 줄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형사사법적 한계를 넘어선 범위에서까지 의혹 해소를 요구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은 지금 ‘흥신소’처럼 돼 있다”고 한탄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은 본래 형사사법 기관이지, 의혹 해소 기관이 아니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최근엔 “정치권이 의혹을 제기하면 검찰이 곧바로 수사를 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사안의 수사 결과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승복받지 못하고, 결국 절반의 진영이 검찰 신뢰를 욕하는 일로 흐른다는 것이다.

공익보다는 진영을 대변하고 진실보다는 정치가 목적인 남발되는 고소·고발의 결과는 수사력 낭비다. 검찰은 과거 특정 시민단체의 고발 사안이 과연 얼마나 기소로 이어졌는지 비공식 통계를 낸 적이 있었다. 3년간 고발은 100건이 넘었는데, 기소가 된 사안은 1건도 없었다고 한다. 고발 단계부터 특정 주장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결국 70%가량은 각하 처분이 내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각하 처분을 하더라도 고발장에 적시된 죄명 하나하나에 대한 판단이 제시돼야 한다.

각자의 진영만 내세우는 고소·고발 남발의 모순은 국회의원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여야는 지난해 국회에서 발생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과 관련해 의원 100여명의 운명을 서울남부지검에 맡겼다. 일부는 검찰이 출석을 요구하면 “의정활동에 바쁘다. 엉뚱한 고발에 부르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반대 진영의 수사가 늑장 처리된다며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대검찰청에 보고된 ‘고소·고발 사건의 합리적 제한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사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에 비해 고소장 접수 비율이 65배를 넘는다. 이 가운데 기댈 곳 없는 억울한 서민의 고소는 인정해야 하겠지만, 진영논리를 대변한 정치권 등의 고소·고발은 지양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경미한 사건은 수사·소추를 금지하는 ‘수사불요제도’를 가진 독일, 고소인 공탁금제도를 시행하는 프랑스, 고소장 선별수리제를 둔 일본의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직 검사장은 “먼지떨이식 수사는 해서는 안되고, 먼지떨이식 고소·고발은 모두 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