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어줄게” 지적장애인 로또1등 당첨금 가로챈 부부

입력 2020-09-23 09:08 수정 2020-09-23 10:10
로또 번호 살피는 시민.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연합뉴스

로또 1등에 당첨된 지적장애인을 속여 당첨금을 가로챈 부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형사1부(이준명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65) 부부에 대해 원심의 무죄 판단을 깨고 각각 징역 3년과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은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낸 지적장애인인 B씨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듣고 “충남에 있는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줄 테니 같이 살자”고 꾀어내 8억8000만원을 송금받았다.

B씨의 사회적 능력은 13살 수준으로,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으로 알려졌다.

A씨 부부는 실제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기는 했으나 등기는 A씨 명의로 했다. 토지와 건물은 대출을 받기도 했으며 남은 돈 중 1억원가량을 가족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B씨는 A씨 부부를 고소했다. A씨 부부는 1심 재판에서 “토지와 건물을 피해자 소유로 하되 등기만 우리 앞으로 하고 식당을 운영해 피해자에게 생활비를 주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B씨에게 심신장애가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무죄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가 재물 소유에 관한 개념을 가졌고, 단순한 유혹에 현혹될 만큼 판단 능력이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B씨의 정신기능에 장애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상에서 소소하게 음식을 사 먹는 행위와 거액을 들여 부동산을 장만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경제활동”이라며 “피해자는 숫자를 읽는 데도 어려움을 느껴 예금 인출조차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들과 피해자 사이에 명의신탁 약정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소유와 등기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를 상대로 마치 피해자 소유로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지을 것처럼 행세해 속인 것”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심신장애가 있는지 몰랐다는 피고인 주장에 대해서는 “10년 이상 알고 지낸 피해자에 대해 몰랐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홍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