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에 명의 몰아준 ‘동네 갭투자 모임’에 과징금

입력 2020-09-22 14:22 수정 2020-09-22 14:35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 5명은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해 각자 1억원대의 재산을 각출해 ‘갭투자’하는 등 다수의 아파트와 분양권을 거래했다. 이들은 양도세 부담이 낮은 무주택자 등 일부에게 명의를 몰아주거나 아예 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 명의를 신탁하기도 했다.

공동명의자가 가족 등 특수관계자가 아닌 점, 자금출처 소명이 부족한 점 등을 수상하게 여긴 국세청은 거래를 검증했다. 결국 이들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세청은 이들에 대해 양도세를 추징하고,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했다.

국세청이 부동산 시장 과열에 편승한 변칙 탈세자들에 대한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22일 밝혔다. 소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동네모임을 비롯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투기세력’으로 지목했던 사모펀드까지 전방위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은 우선 다주택 취득 사모펀드·법인, 고가주택 취득 연소자(외국인 30명 포함) 등 98명을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다주택 취득 사모펀드 관련 혐의자가 10명이고 다주택 취득 법인 관련 혐의자 12명, 고가주택을 취득한 연소자(외국인 30명 포함) 76명 등이다.

다른 사람의 명의로 자본금 100원짜리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하다 과세 당국에 걸린 사례가 있다. 부동산에 수십억원을 투자한 A씨는 페이퍼컴퍼니로 투자금을 받아 부동산 사모펀드에 재투자했다. 이 페이퍼컴퍼니는 사모펀드로부터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배당수익을 받았다. 그러나 경비를 과다하게 계상해 이익을 줄이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탈루했다. 국세청은 A씨를 법인세 및 소득세 탈루 혐의로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전업주부 B씨는 자금 여력이 없는데도 고가 아파트 2채를 취득했다. B씨는 배우자로부터 현금을 증여받고 증여세 신고를 누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인 C씨도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으로 고가 아파트와 최고급 승용차를 취득해 증여 혐의로 조사 대상이 됐다. C씨는 특히 취득한 주택을 임대하면서도 임대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 임대수익을 누락한 혐의도 있다.

국세청은 지방국세청에 설치된 부동산거래탈루대응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지역별 부동산 거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과 공조를 강화해 탈루 혐의 정보를 보다 정교하게 수집·검증한다는 계획이다. 또 부동산 거래 과정의 변칙적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자산 취득부터 부채 상환까지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은 사기를 비롯한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한 것이 확인될 경우에는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관계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금융 추적 조사를 통해 자금 원천의 흐름을 끝까지 추적해 실제 차입 여부 등을 검증하고, 필요 시 자금을 대여한 자와 법인 등에 대하여도 자금 조달 능력을 검증하겠다”며 “조달된 자금이 신고된 소득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확인하는 한편 사업소득 탈루 혐의가 있는 경우 관련 사업체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해 정밀하게 검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