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美의회 입법 실수… 의료보험 보장 내용에 백신은 빠져

입력 2020-09-22 11:32 수정 2020-09-22 11:33

미국에서 일어난 입법 실수로 ‘메디케어’(의료보험) 보장 내용에 ‘코로나19 긴급사용 백신’이 빠진 것으로 밝혀져 당국이 해결책 모색에 나섰다. 대선 등 정치적 이슈를 고려한 ‘졸속 입법’의 부작용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의회는 지난 3월 ‘코로나19 치료·완화·경제보장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메디케어가 백신 비용을 보장해 경제적 부담 없이 가입자에게 백신을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신문은 정작 메디케어가 긴급사용 승인 백신에 대한 비용은 보장하지 않아 당장 백신이 필요한 고위험군 환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특정 약물·치료제에 대한 안전 기준을 낮추고 긴급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정부가 의도했던 무료 백신 정책이 깨지고 수천만명이 백신을 접종받기 위해 별도 비용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메디케어에 가입한 인구는 미국 전체의 15%인 4400만명에 달한다.

백신 비용은 아직 확정된 바 없지만 WSJ는 독감 백신의 가격이 20~46달러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1인당 최대 96달러(약 11만원)까지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사실을 접한 미 보건복지부는 백신을 무료로 지급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긴급사용 백신과 정부 구입 백신이 국민에게 무료로 지급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이다.

WSJ는 백악관이 의회에 압력을 넣어 해당 법안의 수정본을 통과시키게 할 것으로 관측했다. 메디케어가 긴급사용 백신도 보장할 수 있도록 법의 내용을 바꾸면 백신 무료 접종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다만 미 정부는 당장 오는 10월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어서 그 이전에 수정안이 통과될지가 변수다. 지나치게 빠른 백신 개발·접종 속도를 우려한 민주당의 반발도 수정안 통과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이같은 문제가 행정명령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보고 보건복지부와 함께 현존하는 법안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을 찾고 있다고 전해졌다. 법과 규정을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해 메디케어가 백신 비용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건 당국 내부에서는 왜 의회의 그 누구도 법안의 허점에 대해 알아채지 못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당국은 특히 메디케어의 백신 미보장으로 인해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은 노약자 등 고위험군의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