註 : ‘흔적’(피플엔북스 刊)은 독일로 건너간 파독 1세대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온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얘기다. 독일에서 사는 저널리스트이자 파독 간호사들로 이뤄진 연극단체 ‘빨간 구두’ 연출자 박경란의 저서이다. 박경란의 또 다른 저서는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 ‘베를린 오마주’ 등이 있다.
그의 삶에서 탈출구였을까? 당시 춘천간호학교(현 한림성심대)에서 교수 초빙이 있었다….
“서울을 떠나고 싶었어요. 춘천에서 5년을 일하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왔답니다.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거죠.”
1975년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이었다. 그가 가르쳤던 간호학과 제자들이 먼저 독일로 향했다. 말하자면 파독 간호사 기수로 따지면 제자들보다 후배인 셈이다. 그는 독일을 ‘하나님이 제공한 도피처이자 귀양살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온 삶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앞만 보며 열심히 일했다. 학벌이나 가문은 그에게 한낱 군더더기일 뿐이었다….
그의 곁에는 늘 외롭고 병든 성도들이 있다. 가정 문제와 암 투병 중인 교민들을 위로하고 오갈 데 없는 이민자들에게는 손을 내민다. 홀로 사는 그는 방 한 칸을 비워놓고 누구나 오면 묵을 수 있도록 한다. 생활이 고단한 교회 청년들을 불러 소리 없이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팔십이 넘는 노구에도 손수 삼겹살을 구워 청년들의 위장을 채워주며 다독인다. 세월을 이겨낸 얼굴엔 온화한 섬김의 그리스도가 풍겨난다. 백발의 나이팅게일 미소가 그의 얼굴에 보석처럼 반짝이며 빛난다. 그의 미소가 늙지 않는 이유다.
◎독서 노트: 박명희(83)는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고급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 연백으로 이주했고, 또 개성으로 옮겨 초등학교에 다녔다. 1956년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다니며 계몽운동에 나섰으며 이때 종교적 소명 의식도 자랐다. 춘천간호학교(현 한림성심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1975년 파독 간호사로 나갔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형광펜 독서] ‘흔적’ (2): 노년의 파독 간호사, 이방인을 섬기다
입력 2020-09-22 09:44 수정 2020-09-22 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