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유수의 대형 은행을 통한 수상한 돈 거래 정황들이 대거 폭로됐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 10여년 간 추적한 것으로 전 세계 170여개국에 걸쳐 있으며 그 규모는 총 2조 달러(약 2316조원)에 달한다. 은행들은 이들 거래의 배후에 테러조직, 마약밀매범, 부패한 외국 관료 등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온라인매체 버즈피드는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가 취합한 전 세계 수상한 금융거래 1만8000여건이 담긴 파일 2100여건을 입수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6년 파나마페이퍼스 보도를 통해 각국 전·현직 지도자와 정치인, 유명인사 등의 조세회피 의혹을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이번 분석에 함께 참여했다. 대부분은 2011~2017년 자료이나 1999년 자료 일부도 포함됐다.
대형 은행들은 자사를 이용한 수상한 거래가 포착될 경우 60일 이내 FinCEN에 ‘의심활동보고서(SAR)’를 제출해야 하는데, 최근 이 SAR가 버즈피드를 통해 대량 유출됐다. 수상한 거래란 북한 등 미국의 금융제재 대상국과 돈을 주고 받았거나, 돈 세탁 등 불법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뜻한다. ICIJ에 따르면 FinCEN 파일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은행은 HSBC, JP모건체이스, 도이체방크, 스탠다드차타드(SC), 뉴욕멜론은행, 바클레이즈 등이었다. 거래 건수와 액수로는 도이체방크가 압도적이다. 982건으로 총 금액은 1조3000억달러(약 1506조원)에 달한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가 강회되던 2008~2017년 뉴욕의 주요 은행들을 통해 돈 세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부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까지의 기간으로 JP모건과 뉴욕멜론은행 등을 통해 승인된 거래 규모는 1억7500만달러(약 2029억원)에 육박한다.
대량살상무기(WMD) 제조 관련 제재대상인 북한 기업들과 금융거래를 했다는 혐의로 이미 미 법무부에 기소돼있는 중국 단둥훙샹실업발전과 마샤오훙 대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 대표와 그의 회사는 중국과 싱가포르, 캄보디아, 미국 등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위장회사들을 활용해 최종 종착지인 북한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JP모건체이스, 뉴욕멜론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세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캠프를 총괄하는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그는 러시아 정부 및 정보기관,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부와의 유착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인물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단골처럼 등장한다. JP모건체이스는 매너포트와 키프로스의 유령회사들 사이 금융거래가 총 3억 달러 이상 이뤄졌다고 보고했다. 이중에는 지난 2014년 쫓겨난 우크라이나 친러계 성향의 전 대통령을 도왔던 정치 컨설팅 회사도 포함됐다.
이외에도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은 현재 미 재무부 제재를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아르카디 로텐베르크가 비밀 계좌를 이용해 수백만 달러를 세탁하는 데 도움을 줬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SC는 탈레반과 유착관계에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소재 기업의 자금 송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파일들에 대해 은행들은 “다 끝난 거래”라고 해명하거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