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문닫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미래는?

입력 2020-09-22 06:05
남산예술센터 전경. 한국 연극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 공간은 최근 서울시-서울예대 간 계약 종료로 올해 말 폐관을 앞두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남산예술센터가 위치한 옛 서울예대 자리에 K팝 아이돌 육성기관이 들어서기로 하면서 한국 연극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예대(학교법인 동랑예술원) 간 계약 종료로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말 폐관을 앞두고 있어서다.

논란은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 9일 서울 중구 남산에 있는 동랑예술원(옛 서울예대 부지)에 아이돌 육성을 목적으로 한 ‘SM인스티튜트’(SMI)를 설립한다고 공표하면서 불이 붙었다. 부지에는 현재 드라마센터와 예술관(사무동), 심재순관 등 3개 건물이 있는데 이중 드라마센터와 예술관이 서울시가 동랑예술원으로부터 임대한 뒤 서울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해 온 남산예술센터다. SMI는 비어있는 심재순관에 들어설 예정이며 10월부터 국내외 수강생을 모집한다.

드라마센터는 한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극장이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동랑(東朗) 유치진이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과 한국 정부 토지 불하를 토대로 설립한 극장으로 1962년 당시 최신 현대식 극장으로서 창작극 요람 역할을 했다. 이후 운영난에 제작극장 위상을 잃어버리고 대관극장으로 쓰이던 드라마센터는 2009년부터 서울시가 동랑예술원에 매해 10억원을 내고 임대하면서 공공극장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문제는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말로 계약이 끝나는 상황에서 SMI의 발표가 나왔다는 점이다. 심재순관이 소규모 강의실과 100여평의 다목적홀 등으로 이뤄진 작은 건물이어서 SMI가 향후 드라마센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연극계 반응이다.

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온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은 2012년, 2015년에 이어 2018년 4차 위탁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지난 7월 말 서울시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남산예술센터는 문을 닫게 됐다. 서울문화재단은 남산예술센터 대신 2018년 매입해 내년 6월 개관 예정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동랑예술원 측에 대학로 이사 전까지 예술관만 임대를 요청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연극평론가인 김미도 서울과기대 교수는 “계약 종료 6개월 전까지 임대 논의가 결정되지 않아 논의 기간을 1개월 연장했는데, 서울시가 7월에 갑자기 계약을 종료했다. 서울시는 공공극장인 남산예술센터의 운영 종료에 대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며 “동랑예술원도 근래 논란이 됐던 드라마센터를 향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당초 공공극장으로서 남산예술센터의 임대 운영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연극계와 동랑예술원을 중재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박원순 시장이 7월 9일 사망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추가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동랑예술원은 남산예술센터 폐관 이후 드라마센터 운영에 관해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랑예술원 관계자는 “앞서 논의 기간을 연장하면서 계약을 갱신하는 방향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7월 서울시가 임대 종료 통보 공문을 보냈다”면서 “우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드라마센터 운영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는 현장 의견을 총체적으로 반영해 결정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해 10억원의 임대료를 내는 게 옳지 않다는 연극계 지적 등 의견을 두루 고려해 임대 종료를 결정한 것”이라며 “연극계가 문제를 제기해온 드라마센터 소유권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견해를 밝힐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드라마센터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8년 1월 동랑예술원이 서울시에 임대 계약 종료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예대는 교육 등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드라마센터를 직접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서울시에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극계는 “공적 자본이 투입돼 공공극장으로 자리 잡은 드라마센터가 사적으로 이용될 수 없다”며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공공정비)를 꾸렸다. 공공정비 측은 토론회를 열고 “친일파 유치진이 공공극장을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펴낸 책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친일과 냉전의 유산’에는 “유치진은 총독부 부지를 불하받은 다음 이 땅을 1963년에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현 동랑예술원)에 불법 내지 편법적으로 ‘증여’해 국유재산을 사립학교 서울예대 사유재산으로 귀속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동랑예술원은 공식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공공정비 측은 드라마센터가 앞으로도 공공성을 가진 극장으로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재찬 연출가는 “드라마센터가 사유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유치진 선생도 생전에 강조한 내용”이라며 “드라마센터의 역사성과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도 교수는 “서울시 등 관련 주체만 의지를 가지면 드라마센터를 공공극장으로 정립하는 방법은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지난 3년간 논란을 지켜본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확실한 것은 현재의 임대 민간 위탁 방식으로는 공공극장의 확립이라는 난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이라며 “드라마센터 건립과 유지에 참여했던 정부·서울시·연극인이 모두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고 피력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