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3차례 침수피해를 입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위한 정부의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길리 주민 40여명은 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길리 주민들은 올여름 장마로 온 마을이 침수되고, 지뢰가 떠내려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다”며 “수해 당시 국무총리와 영부인 등 높은 분들이 찾아와 이주 대책을 약속했지만 지금 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집터를 마련하고 집을 새로 짓는데 2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 기준은 1600만원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고령의 주민들이 1억8000만원이라는 큰 부채를 안고 이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선포에 따른 이주 지원대책을 마련해 줄 것과 지뢰 위험으로부터 근본적인 해결, 지뢰 피해지역 작물보상비 지급을 함께 촉구했다.
이길리는 지난 1979년 국방부에서 ‘전략촌’으로 조성한 민북마을이다. 북측에서 잘 보이는 곳에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한탄강변에 마을을 만들면서 마을이 한탄강보다 5m 정도 낮은 지대에 위치해 수해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제로 1996년과 1999년 마을 전체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7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달에도 한탄강이 범람해 주택 68채가 침수됐고 이재민 139명이 발생했다.
수해가 거듭되자 주민들은 지난달 마을을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와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에게 마을을 집단이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도, 철원군은 국비 지원을 받아 부지를 매입해 이길리 마을을 집단이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재민은 현행법상 주택 건축 비용이 가구당 1600만원까지만 지원받을 수 있다. 이에 주민들은 추가 지원 없이는 집단이주가 불가능하다며 정부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길리 김종연 이장은 “겨울은 다가오는데 이주 대책은 말만 무성하고 들녘의 벼는 목숨을 노리는 지뢰 때문에 수확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이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위험 지역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 정부는 갈길 잃은 이길리 침수 마을의 이주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철원=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