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 지명 문제를 놓고 미국 정치권이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진보 성향이었던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에 보수적인 인사를 임명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에 민주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새 대법관 지명 문제가 이념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공화당에서 상원의원 2명이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 이전에 새로운 대법관 인준 표결을 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공화당은 집안 단속에 나서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공화당 주류는 “미국을 위한 최종적 대답을 얻기 위해선 대법원은 대법관 9명의 완전체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바이든 후보는 이미 ‘대선에서 이기지 못할 경우 대선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했다’”면서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 대선 당일 전에 새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20일(현지시간)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향해 “양심에 따라줄 것”을 호소했다. 바이든 후보는 또 “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트럼프의 지명은 철회되어야 하며 새 대통령으로서 내가 지명하는 사람이 새 대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헌법은 연방대법관 인준은 전적으로 상원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 상원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이 47석으로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에 이어 리사 머코스키 상원의원이 미국 대선 이전에 새 대법관에 대한 상원 인준 표결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머코스키 상원의원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 여러 주 동안 (새 대법관) 인준 표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면서 “내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머코스키 상원의원은 이어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이전) 당시에는 가정이었으나 지금은 현실이 됐다”고 덧붙였다.
머코스키 상원의원까지 가세하면서 공화당에선 새 대법관 인준 표결을 반대한 상원의원이 2명이 됐다.
하지만 새 대법관 인준 표결을 막기 위해선 공화당에서 최소 4표의 반란표가 필요하다. AFP통신은 “두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더 반대에 합류하면, 인준 표결이 저지·연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이탈 표가 3표일 경우 신임 대법관 인준 표결에서 찬성과 반대가 ‘50대 50’이 나온다. 이 경우 상원의장을 겸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찬성표를 던지면 인준이 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미트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이 ‘3번 타자’가 될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된다고 보도했다. 롬니 상원의원까지 공화당에서 이탈하더라도 여전히 한 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듯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인준 표결 강행 의지를 밝혔으나 시간표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바이든 후보는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향한 호소문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후보는 “이 나리를 에워싼 불길을 식혀 달라”면서 “여러분들의 헌법적 의무와 양심을 견지해 달라”고 밝혔다. 바이든 후보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할 후보에 대해 인준 표결을 하지 말아 달라”면서 “상원은 미국 국민들이 차기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새 대법관 인준을 밀어붙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윌리엄 바 법무장관의 탄핵 가능성도 시사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탄핵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선택권이 있다”면서 “우리의 화살집 안에는 지금 당장 내가 거론하지 않을 화살이 있다”고 은유법을 사용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은 거론하지 않았다. 대법관 인준 표결은 상원의 권한이라 하원의 역할은 거의 없다.
하지만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도 ABC방송에 출연해 “(대법관이 9명이 아니라 8명일 경우) ‘4대 4’로 완벽하게 갈라지면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미국 대선 당일에는 완전체의 대법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즈 의원은 이어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진 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심각한 헌법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바이든은 이미 규모가 큰 법률팀을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