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뮤우~지컬”… 뮤지컬 찬가 ‘썸씽로튼’[리뷰]

입력 2020-09-21 06:00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Hamlet)을 ‘오믈릿’(Omelette)으로 받아낸 유쾌함에다 숨겨진 희대의 뮤지컬을 찾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뮤지컬 ‘썸씽로튼’에 한 가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면 고민 없이 ‘기발함’이 떠오른다. ‘뮤지컬의 탄생을 알아보자’는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된 ‘썸씽로튼’은 발상부터 기발하다. 세기의 천재 셰익스피어의 등장으로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한 닉 바텀이 노스트라다무스의 후손을 자처하는 예언가 토마스를 찾아가 미래를 점치면서 유쾌한 뮤지컬 찬가가 시작된다.

라이센스 초연으로 지난달 막 올린 ‘썸씽로튼’은 지난해 내한 공연 덕에 국내에도 탄탄한 마니아층이 확보된 공연이다. 낭만의 르네상스 시대, 당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썸씽로튼’은 작곡가 웨인 커크패트릭의 기발함에서 시작됐다. ‘인류 최초의 뮤지컬 탄생의 순간은 어땠을까?’ ‘셰익스피어가 허풍을 떠는 성격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느 형제 작가가 셰익스피어를 이기기 위해 형편없는 예언가를 찾아갔다면 어땠을까?’.


바텀 형제는 가난했다. 예술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지만 어쩐지 흥행은 쉽지 않았다. 겨우 먹고 살던 형제의 큰 벽은 희대의 천재 셰익스피어다. 사실 형인 닉은 셰익스피어와 앙숙이다. 아주 오래전 같은 극단에서 활동했는데, 닉은 연기에 소질이 없는 셰익스피어를 골탕 먹이려 “이럴 거면 글이나 쓰라”고 무안을 줬다. 이게 실수(?)였다. 진짜 글을 쓰기 시작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돌풍적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의 방탄소년단(BTS) 급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가 대중의 관심을 끌 수록 바텀 형제는 더 가난해졌다. 여자의 사회생활이 금지됐던 시기였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 닉의 부인 비아가 남장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닉은 고민에 빠졌다. 어느 순간 닉은 미래를 내다봐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만난 예언가 토마스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답을 내놓는다. “뮤우~지컬”

음계에 따라 대사를 읊고, 음악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며, 주인공이 난데없이 탭댄스를 추는 오묘한 공연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말을 닉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극에 음악을 섞은 기괴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소재가 마땅치 않았다. 닉은 다시 토마스를 찾아갔다. “셰익스피어가 앞으로 내놓을 작품 중 하나만 알려주세요.”

토마스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오믈릿’(Omelette)이라고 외쳤다.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Hamlet)의 철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지금부터 ‘썸씽로튼’의 진가가 발휘된다. 숨은 뮤지컬 찾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레미제라블’ ‘렌트’ ‘애니’ ‘캣츠’ ‘시카고’ 등의 명장면과 대사가 패러디될 때 관객석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뮤지컬을 잘 아는 관객이라면 이 지점을 더 빠르게 잡아챌 수 있어 극을 한층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소설 대목이나 단어를 차용해 ‘골 때리는’ 명장면을 완성할 때면 무릎을 ‘탁’치는 기발함에 탄성이 터졌다.

특히 뮤지컬 ‘캣츠’를 패러디할 때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현재 내한 공연이 진행되고 있어 심리적 거리감이 좁은 덕분이다. “미래에는 고양이들이 춤을 추는 공연이 나온대”라는 토마스의 대사나 “그리자벨라는 어디 갔어?” “젤리클 축제 갔지”라는 앙상블의 대사를 눈치챈 관객은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 3장에 나오는 “밤이 가고 낮이 오듯 하늘이 밝아오듯 변함없는 진리의 말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너에게 진실하랴”라는 대사를 나이젤이 능청맞게 읊을 때도 분위기는 고조됐다. 번역의 중심에는 황석희 번역가가 있다. 원 대본을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하면서 ‘서편제’ 등 국내 창작 공연 패러디를 첨가하기도 했다.

닉의 섬세한 감정선과 셰익스피어의 허풍은 극의 진가를 배가하는 묘미다. “셰익스피어 너무 싫어”를 외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닉은 실은 아내를 사랑하고 동생을 살뜰하게 살피며 누구보다 예술을 동경하는 인물이다. 동생의 재능을 알고, 믿으면서도 당장 개막이 급해 토마스의 예언을 따르지만 결국 예술의 본질을 택한다.

셰익스피어의 능청은 지금까지 대중의 인식 속 위인의 이미지를 깨부순다. 딱 붙는 스키니를 입고 요염하게 춤을 추며 관심을 갈구하고, 자신을 찬양하는 파티를 스스로 열어 힘껏 “셰익스피어!”를 환호하도록 하는 그는 예술가보다는 셀럽에 가깝다. “될까, 봐도, 살짝?” 처럼 말할 때마다 도치법을 쓰며 과장된 어법을 구사하지만 결코 밉지 않은 인물이다. 창작의 고통과 부담감 속에서도 진정성을 녹여 명작을 완성해내고, 유대인의 투자를 받아 참수형 위기에 놓인 바텀 형제를 위해 증언하며 목숨을 구한 의인이기도 하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억압받았던 현실도 유쾌하게 녹여냈다. 닉의 부인인 비아는 “여자도 할 수 있어”를 말버릇처럼 토해낸다. 그는 여자의 몸으로는 사회에 나설 수 없자 남장을 하고 일자리를 찾는다. 여느 남자보다 일 처리가 수월해 ‘OO보이’라는 수식어를 달만큼 능동적이다. 나이젤과 사랑을 나누는 포샤 역시 보수적인 청교도 가정에서 자랐지만, 시와 예술을 매우 사랑하고 용기 있는 여성이다. 비아와 포샤 모두 전형적으로 지고지순함을 강요받았던 전통적인 여성상을 깨고 주체적인 여성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