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 외교부 국장급 협의체인 ‘동맹대화’를 “예속과 굴종의 올가미”라고 폄하하며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북한이 ‘구걸’ 등 원색적인 언어로, 대남 비난에 나선 것은 지난 6월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한·미워킹그룹에 이은 또 다른 협의체 출범이 임박하면서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메아리’는 20일 ‘실무그룹도 부족해 이젠 동맹대화까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정부가 “스스로 외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자기의 목줄에 올가미를 더욱 조여달라고 애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동맹대화와 관련해 반응한 것은 처음이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동맹대화 신설에 합의했었다.
메아리는 “동맹대화에 대해 (남한) 외교부 당국자들은 조선반도(한반도) 문제, 방위비 분담금 문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문제를 비롯한 현안 문제들을 아래급에서부터 세부적으로 논의해 고위급에서 신속히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기구라고 요란스럽게 광고하고 있다”며 “이러한 광고는 예속과 굴종의 올가미인 동맹대의 반동적 본질을 가리기 위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아리는 그러면서 “이젠 좀 정신을 차릴 때가 됐겠는데, 아직까지 상전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꺼내주겠다는 꼬락서니를 보면 실로 가련하기 짝이 없다”며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지금처럼 사대와 굴종에 계속 매달린다면 언제 가도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를 면할 수 없다”고 비아냥댔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우리 정부를 비난한 것은 약 3개월 만이다. 북한은 지난 6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 결정 직후 대남 비난을 자제해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시했는데, 이를 폐지하는 게 아닌 새 협의체를 만든다고 해 짜증이 난 것 같다”며 “북한이 동맹대화를 한·미워킹그룹의 하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2018년 11월 한·미워킹그룹 출범 직후부터 반감을 표해 왔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지난 6월 담화문에서 한·미워킹그룹을 ‘친미사대의 올가미’로 규정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공신력 있는 매체가 아닌 선전 매체를 통해 대남 비난에 나선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나름대로 비난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중고’(대북 제재·코로나19·자연재해)에 처한 북한이 향후 우리 정부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상황 관리에 나섰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끝난 뒤에야 남북 간 대화 및 협력 재개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11월이 지나야 남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북한의 시선은 비핵화 협상의 열쇠를 쥔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 쏠려있다는 뜻이다.
한편 북한은 9·19 평양공동선언 2주년 관련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