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못 믿어’ 이스타 노조, 법정관리 별도 신청키로…재매각 차질 빚나

입력 2020-09-20 16:25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배임, 횡령 의혹이 있는 경영진을 못 믿겠다’며 사측과는 별개로 직접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했다. ‘다음 달 중순까진 매수 후보 기업과 사전 인수·합병(M&A) 계약하겠다’며 딜 성사에 자신감을 드러낸 사측의 일정에 변수가 생겼다.

20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18일까지 조합원과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법정관리 신청 참여자를 모집했다. 체불된 임금으로 임금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직원은 관련법에 따라 채권자 자격으로 법정 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 박이삼 노조위원장은 “자본금의 10분의 1 이상 채권액을 가진 채권자는 회생신청을 할 수 있는데 그저께까지 100여명이 법정관리 신청에 참여하겠다고 했다”며 “이들의 임금 채권 액수는 약 50억원으로 현재 회사 자본금(470여억원)의 10분의 1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법무법인 계약비 등 부대비용을 마련하고 이주 중 본격적으로 법정관리 신청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다음 달 초까지는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노조가 사측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려는 건 현 경영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현재 사측은 ‘인수 대상자가 정해져있어야 법원이 청산 대신 회생을 결론내릴 가능성이 높다’며 재매각 대상자가 추려진 다음 달 중순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지금 인수 후보자로 여러 회사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회사들의 과거 인수 사례를 보면 매물 회사가 계약 전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해놓았던 경우가 많다”며 “경영진이 법정관리 신청 전 M&A 계약을 완료하려는 건 계약 과정에서 법무법인을 직접 선임해 경영진의 배임·횡령 의혹을 감추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임금 체불 문제, 창업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후원 강요 의혹 등 여러 논란을 거치면서 사측에 대한 노조의 불신이 정점으로 치달은 것이다.

만약 노조가 계획대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다음 달 중순 인수 후보자와 사전 재매각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사측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기업청산의 위험성, 법정관리 종류 및 여파 등 인수 후보 기업이 감안해야 하는 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물류·레저기업 6곳과 사모펀드 2곳이 이스타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항공과의 소송에 따른 불확실성도 인수 후보 기업에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17일 제주항공에 주식매수 이행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조만간 손해배상도 청구할 거라고 밝혔다. 제주항공도 이스타항공 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에 255억원의 계약금 반환 소송을 검토 중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