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국내 도입 여부를 가름할 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도입한 후 1년 4개월여 만이다. 게임이용장애의 빈약한 과학적 근거가 논란이 돼 업계와 학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지난해 7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문제를 논의할 민관 협의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연구 용역 위탁이 더뎌지는 등 합의 도출에 애를 먹고 있다. “답을 이미 정해놓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국내도입 문제 관련 민관 협의체(민관 협의체)는 지난 18일 제6차 회의를 열고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추진할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를 진행했다. 민관 협의체는 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신설하는 국제질병분류 개정안(ICD-11)을 채택하면서 어떻게 국내 도입을 추진할 지 논의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민간·정부 위원 2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동 의장은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 김동일 서울대 교수다.
ICD-11은 2022년 1월부터 발효된다. 국내 도입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가 통계법에 의거 5년마다 개정하기 때문에 이르면 2025년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일 연구용역 계획수립을 위한 5차 회의가 진행됐지만 실제 연구는 9개월여가 지나서야 추진되는 형국이다.
연구 내용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 ▲게임이용 장애 국내 실태조사 기획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등 3가지다.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은 WHO의 게임이용 장애 등재 결정에 대해 과학적‧객관적 검증을 실시하는 연구다. 서울대 심리학과 안우영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다.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된 국내외 연구의 과학적 근거가 얼마나 충분한지, WHO의 결정이 어떤 과정과 근거에 의해 이뤄졌는지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게임이용 장애 실태조사 기획’은 WHO의 게임이용 장애 진단기준에 따른 국내 진단군 현황과 특성 등의 실태조사를 설계하는 연구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정슬기 교수가 연구책임자다. 장애 진단기준을 설문 문항 등 진단도구로 구체화하고 표본 선정 및 조사 방법을 설계해 그 결과를 토대로 본실태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는 본조사가 추진되면 국내 게임이용 장애 진단군 규모와 특성, 치료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은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시 산업‧문화‧교육‧보건의료 등 사회 여러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연구다.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한동숭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다. 이 연구에서는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도입할 경우 게임산업, 표현의 자유, 교육, 치료현장에 미치게 될 영향 등을 분야별로 분석한 뒤, 분야별 연관 관계를 고려한 종합적 파급효과를 장단기로 나누어 살펴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질병코드 도입 시 예상되는 다양한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 연구는 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용역 발주를 시작해 수행기관 공모를 거쳤다. 1년의 연구가 진행된 뒤 본조사가 추진된다.
국회 관계자는 “민관협의체의 구성원과 연구용역 면면을 보면 이미 답을 정해놓은 것 같다”면서 “게임 질병코드의 과학적 근거를 판단하는 시선부터 객관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