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방법원장 재직 당시 소속 직원들이 연루된 비리 사건의 확대를 막기 위해 수사기밀을 빼돌려 법원행정처에 건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직 대법원장까지 법정에 세운 초유의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 넘겨진 사건 중 네 번째이자, 6명째 무죄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김래니)는 18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법원장은 2016년 8월~11월 서울서부지법 소속 집행관사무소 사무원의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사건 확대를 막기 위해 수사기밀을 유출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를 받고 있다. 또 법원 직원에게 영장청구서 사본과 수사를 받은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 등을 입수해 보고하게 한 혐의(직권남용)도 있다. 보고받은 내용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5차례 걸쳐 전달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임 전 차장으로부터 수사확대 저지 지시를 받았다는 걸 인정할 자료가 없고 관련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법원장으로서 철저한 감사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법원이 자의적으로 수사를 저지한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 등 증거에 의하더라도 수사확대 저지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앞선 결심공판에서 “이 전 법원장이 헌법상 영장주의의 취지를 오염시켰고 신뢰를 훼손했고 조직 보호를 위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점에서 범행이 매우 중대한데도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며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대부분 증거능력조차 없는 것이라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위해 쓸 수 있는 증거가 거의 없다”는 이 전 법원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선고가 끝난 뒤 이 전 법원장은 “30년 넘게 일선 법원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재판해온 한 법관의 훼손된 명예가 조금이라도 회복돼 기쁘다”며 “그동안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법원은 앞서 지난 1월 대법원 근무 시절 취급했던 사건을 수임하고 기밀문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로 기소된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변호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조의연·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지난 2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7건의 사건 중 1심 선고가 내려진 네 건이 모두 무죄 판단을 받은 셈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인물들이 연루된 세 사건은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 사건 1심 결론은 빨라야 올해 말, 늦으면 내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은 오는 11월까지, 임 전 차장 사건도 오는 12월까지 증인신문 일정이 잡혀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들도 2심 재판이 남아 있다. 앞서 유 변호사와 신 전 수석부장판사 등 3명과 임 전 수석부장판사 사건은 모두 검찰이 항소해 오는 9월과 10월 2심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