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전날부터 집 비웠다…‘라면 형제’ 방임 수사 불가피

입력 2020-09-18 10:55 수정 2020-09-18 11:27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외벽이 17일 오전 검게 그을려있다. 연합뉴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일어난 불로 중상을 입은 초등학생 형제의 엄마가 화재 전날부터 집을 비운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그에 대한 방임 혐의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방임혐의보다 폭행여부에 대해 형사적인 책임을 묻는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오랜기간 양육해온 장애인 가정의 어머니의 양육스트레스에 대한 사회적 돌봄이 가능했을 경우 이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야간돌봄이 가능하다는 것이어서 책임을 한 가정에게만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반론도 있다.

18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발생한 빌라 화재로 중화상을 입은 초등생 A군(10)과 B군(8) 형제는 부엌에서 불이 나자 당시 집을 비운 어머니 C씨(30)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같은 날 오전 11시 16분쯤 둘째인 B군의 휴대폰으로 걸린 전화를 받은 C씨는 화재 발생 10여분 뒤 집에 도착했고, 그 사이 A군 형제는 인천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A군은 안방 침대 위 아동용 텐트 안에서 전신의 40%에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됐고, B군은 침대와 맞닿은 책상 아래 좁은 공간에 있다가 다리 등에 화상을 입었다.

화재 직후 현장에 출동한 한 소방관은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었고 책상과 바로 붙어 있는 침대 사이 공간에 쌓여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안에 있던 작은 아이를 구조했다”고 말했다.

형인 A군이 동생 B군을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몸을 피하게 하고, 자신은 화재로 인한 연기를 피해 텐트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C씨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소방관 등에게 “어제 저녁에 집에서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당일 A군 형제가 이송된 인천 한 병원에서도 "화재 당시 어디 있었느냐"는 경찰관의 물음에 "지인을 만나고 있었다"고 답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초등학생인 자녀들만 두고 장시간 집을 비운 행위가 아동학대의 일종인 방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아이들이 영유아는 아니지만, 아직 성숙하지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라며 “부모가 2∼3시간도 아닌 전날부터 장시간 집을 비웠고 결과적으로 불이 났기 때문에 방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씨는 2018년과 지난해에도 A군 형제를 자주 방치해 3차례나 경찰에 신고되기도 했다.

문제는 발달장애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들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때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장애인 가정의 양육스트레스를 어머니가 혼자져야 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한 사회복지전달체계를 긴급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C씨는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를 앓는 큰아들을 때리기까지 해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및 방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바 있다.

경찰은 C씨가 오랜시간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발생해 아이들이 크게 다친 점을 고려해 방임 혐의 수사에 착수할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학대예방 경찰관(APO)과 함께 사실관계를 우선 확인할 예정”이라며 “범죄 혐의점이 있어 보이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불이 난 빌라 내부를 정밀감식하는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부엌에서 음식물을 조리하던 중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한다”며 “기름을 고의로 뿌리는 등 외부요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화재 당시의 정황을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