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기자 실명비판 논란…“좌표찍기” vs “기명기사인데”

입력 2020-09-18 00:02 수정 2020-09-18 00:02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판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의 실명을 태그로 페이스북에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공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기자가 기명으로 기사를 쓰는 만큼 논란이 벌어질 때 책임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 의원과 한겨레 사이의 갈등은 지난 9일 ‘“카투사 자체가 편한 보직”…‘추미애 아들 의혹’ 불길에 기름 붓는 여당 의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 의원은 같은 날 오전 YTN 라디오에 출연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씨의 특혜 의혹에 대해 “전체 규정을 살피면 군의 해명도, 그리고 서씨 측의 해명도 둘 다 병립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공식적인 발표에 의해서 서씨 측의 주장이 부정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 게 조금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를 보도하면서 이 의원이 “추 장관 아들의 병가 처리 문제는 육군 규정도 미군 규정도 다 병립할 수 있는데 흡사 서씨 주장이 부정된 것처럼 보도된다”고 주장했다는 식으로 직접 인용의 형식을 썼다. 대부분의 언론도 그날 비슷한 내용, 형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한겨레의 직접 인용 보도를 문제 삼아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실명 태그’와 함께 “기자님 맘대로 해석도 문제지만 직접인용 따옴표 함부로 붙이면 안되는거 기사작성 기본 아니신가?!”라며 “기자님이야말로 부정확한 정보 책임지셔야 할 듯 싶다”고 글을 남겼다.

한겨레는 기사 해당 부분이 정확한 인용 방식은 아니라는 이 의원의 지적을 받아들여 10일 오후 간접 인용 방식으로 기사를 수정했다. 이후 이 의원에게 기자 실명 태그를 내려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한겨레에서는 김태년 원내대표에게 연락을 취해 전화 응답을 요청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의원님이 저녁 늦게까지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못 받은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한겨레의 전화를 피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재정 의원이 공개한 통화기록 이재정 의원 페이스북

이 의원은 한겨레 측으로부터 10통 이상의 부재중 전화 기록을 공개하면서 “어떨 때 분 단위로 몰아친 전화라면 이건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요”라며 “원내대표를 통해 해결하려는 발상은 스스로 권력임을 너무 잘 알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모 한겨레 정치부장은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요즘 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좌표 찍기’ 같은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이전에도 표적 공격을 받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급한 마음에서 전화를 계속 걸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께 너무 많은 전화를 걸었던 것,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던 점은 이 의원이 불쾌해할 만한 일이었다. 논란이 커진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유감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려 “사안 처음부터 그 글까지 기자, 국회 담당, 정치부장 누구 하나 끝끝내 사과 한 번 없다”고 한겨레와 정치부장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재차 요구했다. 이어 “의원실은 공식적 방법의 문제 제기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과 한겨레 사이의 논쟁은 타 언론으로도 번졌다. 한 언론이 ‘공격 좌표’를 찍은 행위라고 비판하자 이 의원이 즉각 해당 기사에 대해서도 기자의 이름을 태그해 “제대로 확인하거나 취재가 없으셨네요”라며 “기본적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스스로의 권력을 과소평가하시지 마시길 간절히 호소드린다”고 적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원론적으로 기자는 이름을 달고 쓰는 만큼 논란이 벌어질 때 책임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기자는 공개적인 공간에서 활동해야 하는 직업인데 그러면 기명 기사를 안 쓰는게 맞는 것”이라며 “신중하고 정확하게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들이 기자를 어떻게 공격하는지,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이런 부분은 취재해서 쓸 수 있다. 이번 사건이 한 번 더 생각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이 의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적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기사가 수정이 됐다면 이름을 굳이 놔두고 있을 필요는 있냐”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번 사안에 대해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안타깝게 여긴 건 그 기자의 역량의 문제거나 한겨레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정치권도 기자도 사실 국민 앞에 권력이다. 본인의 얼굴과 본인의 이름으로 정말 국민 앞에 책임지는 모습 서로가 함께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