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 스트레스, 사망자에 트라우마…의료진 마음건강 ‘적신호’

입력 2020-09-17 17:27 수정 2020-09-17 22:38
연합뉴스

“돌보던 환자가 돌아가시는 것도 슬픈데 시신을 처리하고 소독하고…. 트라우마 많이 남았어요.”

경기도의 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이모(43·여)씨는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 도중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이 병원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 한 명이 숨졌다. 이씨는 시신을 화장장으로 떠나보내기 전까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의료진들이 정신적 피로 누적을 호소하고 있다. 업무 자체의 스트레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은 물론이고 일부 종사자들은 트라우마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도 트라우마를 얻은 의료진 중 하나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오래 일한 편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 사례는 처음 겪었다. 감염병 시신 처리 지침에 따라 환자의 시신을 닦고 몸의 구멍을 막은 다음 바디백에 이중으로 담았다. 일련의 과정은 뇌리에 박혔다. 이씨는 “다른 환자들 상태가 나빠질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했다.

환자가 사망하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강원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A씨(31·여)는 “면회 제한으로 환자 임종을 지키지 못한 보호자가 계셨다”며 “‘다 너희 탓’이라며 원망하신 게 가슴에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업무 전반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심각했다. 감염 위험 때문에 음압병실 내부의 벽, 창문, 바닥, 의료폐기물 청소는 물론 환자의 대변을 처리하는 일까지 의료진의 몫이다. A씨는 “간호하기도 바쁜데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하루에 2~3시간을 청소에 쓴다”고 전했다.

가장 힘든 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언제까지 고통이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또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진의 트라우마 관리를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소진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해 힘들어하는 의료진을 직접 찾아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부터 전날까지 549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하지만 정작 의료진이 이를 통해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최근 장마와 태풍,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적지 않은 사업들이 중단·보류됐다. 코로나19 환자가 늘면서 시간을 낼 수 없는 의료진도 많다. 홍 교수는 “인력 증원 등을 통해 업무 부담을 덜어주거나 의료진이 조금 더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