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4000여명이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물품 분류작업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택배 물량이 폭증하는 추석을 목전에 두고 배송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7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4000여명 택배 기사들이 21일부터 무기한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지난 14~16일 택배기사를 대상으로 분류작업 전면 거부에 대한 찬반투표를 했다. 민주노총 택배연대노조 조합원을 포함한 4358명이 투표에 참여해 4160명(95.5%)이 찬성했다. 이들은 “택배기사 업무의 절반가량은 분류작업으로 이뤄지지만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분류작업은 공짜노동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물품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배송을 해야만 하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 이유”라며 “하루 13~16시간 노동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려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정부는 택배 노동자의 과중한 업무를 우려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물품 분류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한시적으로 충원할 것을 택배업계에 권고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택배사를 방문해 “택배 종사자 보호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택배기사 과로 문제에 관한 관심을 당부했다. 하지만 택배사들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대책위는 “온 사회가 택배 노동의 과로사를 우려하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하는데 택배사들은 눈과 귀를 가린 채 버티고 있다”며 “과로사를 막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안타깝지만, 배송이 늦어지더라도 더는 과로로 쓰러지는 택배 노동자는 없어야 한다는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당장 21일부터 분류작업이 멈추는 택배사는 CJ대한통운, 한진, 로젠,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4대 택배사와 우체국이 포함된다. 택배기사 4000여명이 분류작업 거부에 나서면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부 지역은 택배 배송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주요 택배사에 속한 기사는 4만여명에 달해 4000여명의 분류작업 거부로 인한 배송 대란은 극히 제한적일 거란 시각도 있다. 한 택배사 관계자는 “분류작업 거부에 참여하는 기사 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부정 영향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택배기사와 택배사 간 극적 타결 가능성도 있다. 대책위는 “택배사가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분류작업 전면 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대화에 나설 것”고 밝혔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19명의 택배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으며 이 중 9명은 올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