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광진구에 있는 ‘온기우편함’에 3장으로 이뤄진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글쓴이는 얼마 전 부인과 사별한 60대 독거노인. 은퇴를 앞둔 그는 가족없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해하고 있었다. 편지에는 “외롭다” “난 쓸모없다”는 말이 되풀이됐다.
답장을 위해 연필을 손에 쥔 건 가정주부 오모(56)씨였다. 그는 찬찬히 노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2시간 만에 완성된 편지는 ‘어르신, 젊었을 적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났다면 다시 답장을 보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어르신과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의미였다.
오씨도 어르신처럼 사회로부터 고립된 경험이 있다. 그는 17일 “암 투병을 하느라 3년간 집과 병원만 오갔던 적이 있다”고 전했다. 항암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겨 외부활동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이 스며든 손편지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남편과 딸이 전해준 엽서를 보고 삶을 향한 의지를 다졌었다”며 “직접 쓴 편지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잘 안다”고 설명했다.
오씨가 일주일에 2시간씩 들러 편지를 쓰고 있는 온기우편함은 비영리 단체다. 2017년부터 한국우편사업진흥원과 함께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서울에 설치된 7개의 온기우편함에 사연을 넣으면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답장을 써서 보내준다.
봉사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사연들이 사뭇 진지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사회적 만남이 제한되자 외로움과 헛헛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학생 새내기 봉사자 정지민(20·여)씨는 초등학생의 편지를 받았다. 코로나19로 밖에 나가지 못해 동생과 싸우는 일이 많아져 속상하다는 사연이었다. 정씨는 ‘동생을 사랑하니까 싸우고 나서 마음이 아픈 것이니 걱정말라’고 적었다. 그는 어리다고 해서 마냥 장난스럽게만 대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직장인 봉사자 김의연(35·여)씨는 달랑 ‘안녕하세요’ 한 줄 적힌 편지에 3장 분량의 답장을 보냈다. 김씨는 “편지를 보고 문득 코로나 시대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고 했다.
온기우편함에 이날까지 도착한 편지는 총 8017통에 달한다. 코로나19로 취업이 어려운 취업준비생의 사연이나 정리해고가 두려운 직장인의 사연부터 행복에 관해 묻는 심오한 사연까지 많은 이들이 온기우편함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평범한 누군가’라고 봉사자들은 입을 모은다.
조현식 온기우편함 대표는 “서로 작은 안부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며 “코로나 블루를 함께 이겨내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