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가 성폭행했다” 무고사건… 대법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입력 2020-09-17 14:55

지도교수가 성폭행 했다며 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여성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지도교수를 고소하며 근거로 내세웠던 사실이 허위가 아닌 이상 무고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지도교수인 B씨가 성폭행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2014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14차례 걸쳐 B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신고했지만, 검찰은 2017년 5월 수차례 걸쳐 간음했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내렸다. B씨는 이후 A씨가 무고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1심은 A씨의 무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조사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점, 피해 발생 전후로 A씨와 B씨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A씨와 B씨 아들과의 관계 등을 들며 “의사에 반한 성폭행이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B씨가 자신의 지위를 적극 이용해 A씨를 그루밍(길들이기)해 심리적 항거불능에 빠뜨려 간음했고 이로 인해 A씨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만족감을 표현했다”며 “A씨가 그루밍 수법에 의해 학습화된 무기력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방해받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은 “A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전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고, 도리어 언론매체를 활용해 본인의 주장이 사실인 양 방송 등이 이뤄지게 해 B씨에게 추가적 피해를 가했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인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인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라며 “고소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 곧 고소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의 사실이라고 단정하여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와 제자라는 위계적 관계에 더해 B씨에게 내면의 상처를 고백하고 해결책을 상담받아 왔던 점까지 고려하면 A씨는 내키지 않더라도 복종하거나 B씨와 맺은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