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본 날’ 세는 아이들…마스크세대 초1들 이야기

입력 2020-09-18 00:05 수정 2020-09-18 00:05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하늘(7)군이 사는 집 창가에선 하늘 군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보인다. 지난 11일 인터뷰를 하던 중 학교에 대한 질문을 받은 하늘 군이 창문을 열어 학교를 소개한 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M세대를 아십니까?” 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던진 질문입니다. 이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어쩌다 학교에 가도 대화가 금지되는” 경험 중인 세대를 ‘마스크(M) 세대’라 불렀습니다.

M세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죠.

올해 학교에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생들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M세대입니다. 코로나19 이전의 학교는 아예 모르는 아이들이죠. 반 친구들이 누군지도 잘 모른 채 ‘원격수업’과 ‘마스크 수업’으로 학교라는 사회를 처음 경험하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의 첫 단추인 초등학교 1학년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지,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코로나19 시대’가 된 ‘2020년 초1’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서울, 경기, 부산의 초등 1학년생 8명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학교 간 날 횟수 세는 아이들…“학교 많이 가봤어요. 5번쯤?”
경기도 분당 한 초등학교 1학년 정하온(가명)양이 지난 5월 알록달록 예쁜 삔, 옷을 차려입고 학교로 들어서고 있다. 가족 제공

학교를 안 가본 건 아닙니다. 경기도 용인의 D초등학교에 다니는 김하늘(가명·7)군은 여름방학 전에 1주일에 한 번씩 갔습니다. 다만 2학기 개학을 한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강화로 전면 원격수업이 이뤄지고 있어 매일 집에 있습니다.

지난 11일 집에서 만난 하늘이는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도 보고 친구들도 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어 “처음 학교 갔던 날 급식이 맛있었어요”라며 쑥스럽게 웃던 하늘이가 기자를 베란다로 이끌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바로 저기 앞이에요.” 하늘이 손을 따라 창밖을 보니 창문 너머 바로 초등학교가 보였습니다.

자랑스러운 듯 학교를 소개하다 잠시 조용히 학교를 바라보던 하늘이에게 “학교는 많이 가봤어요?”라고 물었습니다.

하늘이는 의외로 “네”라고 말했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몇 번 가봤느냐 되물었더니 “5번 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옆에 있던 하늘이 엄마가 “5번이 많아?”라고 하니 “매주 수요일에는 간 것 같아서요. 뭐…. 20번이 5번보다 많죠”라며 웃었습니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한’ 엄마와 ‘그런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아이가 느끼는 지금은 역시 조금은 다른 걸까요.

서울 송파에 사는 1학년생 권지아(가명)양도 학교에 간 횟수를 세고 있었습니다. “7번쯤 간 것 같다”는 지아도 학교 얘기를 꺼내니 “학교는 넓어서 좋아요. 친구도 많고 재미있어요”라며 신나 했습니다.

지아는 ”어린이집은 좁잖아요. 그런데 학교는 넓고 친구들도 훨씬 많아요.” 매일 학교에 가든 안 가든 ‘이제 초등생’이라는 으쓱함은 마찬가지인 듯했습니다.

앞서 하늘이도 1학년이 되니 “학교에 어울리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뿌듯해 했습니다.


“떨어뜨린 연필 친구가 주워 준 게 되게 재밌었어요”

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이는 ‘친구를 찾아’ 놀이가 재밌었다고 합니다. 눈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손을 뻗어서 손에 닿은 친구한테 가면을 넘겨주는 게임이지요. 하늘이는 “마스크를 끼고 하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실뜨기’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지아는 단연 “친구들과 실뜨기하며 논 거”를 꼽았습니다. “학교에서 하면 친구들이랑 같이하니까 손이 막 움직여서 (실뜨기가 잘돼서) 재밌어요.” 집에서 혼자 하면 몇 번 못하는 실뜨기가 친구들과 하면 ‘계속계속’ 할 수 있어 몇 배는 신이 나는 거죠.

실뜨기 얘기를 한참 하던 지아는 갑자기 공부할 때 얘길 꺼냈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 연필을 떨어뜨렸거든요? 근데 친구가 주워줬는데 그게 되게 재밌었어요.”

‘친구가 자기 물건을 주워줘 고마워하는 일’도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일인 셈이죠. 놀이만 기억에 남은 건 아니었던 겁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정하온(가명)양도 1학년입니다. “유치원은 좀 쉬운 걸 하고 학교는 좀 어려운 걸 하는 것 같다”고 진지하게 말하더니 “근데 1학년은 재밌는 것만 하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습니다.

“선생님이 맨날 재밌는 걸 해주신다” 자랑하던 하온이는 가장 재밌었던 일로 “초콜릿이랑 우유랑 망고주스를 섞어 보는 활동”을 얘기했습니다.

“그걸 다 섞어서 먹어보는 거였어요. 근데 전 안 먹었어요. 친구들이 먹고 ‘으웩’ 하는 걸 봐서. 히히히.” 그때 친구들 표정이 떠오르는 듯 하온이는 깔깔 웃었습니다.


“마스크는 적응”했지만 “친구들 얼굴 자세히 보고 싶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계속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에는 거부감이 크진 않았습니다. “코로나는 무서운 거”니 “마스크는 당연히 껴야 한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늘이는 “마스크는 항상 껴요. 마스크 걸이가 있어서 안 잃어버려요”라며 자신의 마스크 걸이를 자랑했습니다.

하온이도 “마스크 쓰는 건 점점 익숙해졌어요. 지금은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안 불편한 건 아닙니다. 콧물이 나거나 땀이 나거나 이물질이 묻을 때 스스로 처리하기는 아직 쉽지 않기 때문이죠.

하늘이는 “학교에서 한 번 밖으로 산책하러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날씨가 더워서 축축해졌어요. 그럴 땐 새 걸로 바꿔줘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윤지호(가명)군도 학교에서 물 먹을 때 빼고는 절대 안 빼는 마스크지만 ‘코피가 났던 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호는 “코피 났을 때 코만 내리고 마스크를 했는데 엄청 불편했어요. 저는 마스크를 벗으면 숨을 안 쉬어요”라고 전했습니다.

마스크 때문에 친구들 얼굴을 모르는 것도 속상합니다.

부산시 수영구의 초1 박지현(가명)양은 “마스크가 불편하진 않지만 마스크 없이 놀고 싶어요”라며 “친구들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짝꿍은 없어요”…“교실 말곤 급식실, 화장실만 알아요”
방역지침에 맞춘 학교생활이다 보니 등교를 해도 움직이는 동선은 최소화돼 있습니다. 다른 학년은 물론 같은 학년의 다른 반 아이들을 만날 일도 없죠.

대부분 아이는 학교 안에서 자기 교실과 화장실, 급식실만 가봤다고 얘기했습니다. 급식도 각자 교실에서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가본 아이도 없었습니다.

하늘이는 “다른 데도 가보고 싶어요. 1학년부터 5년까지는 반이 9개인데, 6학년은 10개 반이 있대요. 그래서 거기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교실 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한 반을 2분의 1 또는 3분의 1로 나눠 등교하는 학교가 많다 보니 교실 내 분위기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홀수반 짝수반으로 나눠 등교했던 하온이네 반 학생은 27명이지만 하온이가 이름을 아는 친구는 5명입니다.

역시 홀짝반으로 나뉘어 있는 하늘이는 “나랑 같이 학교 오는 애는 13명이에요. 그런데 몇 명은 안 오고…. 그래서 잘 몰라요”라면서 “아 그리고 아직 짝꿍이 없어요. 코로나 때문에”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코로나 지겹지 않니? 친구들한테도 묻고 싶어요”
정하온(가명)양이 Zoom 화상 수업을 통해 노트북으로 같은 반 친구들 얼굴을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계속 미뤄지면서 집에서 ‘엄마와 있는’ 시간에 적응되어 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초1이 된 게 너무 신난다”던 지호는 “학교가 좋다”면서도 “집에서 수업하는 게 지금은 더 좋아요. 엄마랑 같이 있고, 혼자만 있으니까 편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한 명 친구만 있으면 되는데 그게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지호가 학교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종이접기, 컴퓨터실, 수학 수업을 좋아하지만 “학교에 맨날 가는 게 피곤할 것 같다”는 게 지호의 이유였습니다.

집 앞 학교를 자랑했던 하늘이도 “1주일에 한 번만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시간이 많은 거로 수업해야 하는데(수업마다 수업시간이 긴데) 온라인 수업은 1시간 하면 다 끝나서 좋다”는 겁니다.

그래도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 가기를 기다립니다. 뭐니뭐니 해도 친구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못 만나본 친구들에게 “너희는 코로나 지겹지 않니?”라고 묻고 싶다던 하온이의 말에선 “너무 지겹다”는 진심이 튀어나왔습니다.

하온이는 “언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어요?”라고 묻기도 했죠.

집이 더 좋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진심은 다르다는 게 엄마들 얘기였습니다.

당장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습관이 망가지고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얘기하거나 뛰어놀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 때문에 덜 내켜하는 거지, 막상 학교를 다녀온 날 훨씬 생기가 넘친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어서 즐거워요. 코로나19가 끝나 학교 가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신나게 놀 거예요”라는 말은 인터뷰한 8명 모두가 한 얘기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완화에 따라 오는 21일부터 수도권 지역에서도 전면 원격수업이 풀립니다. 1주일에 한두 번, 제한적 조건에서 다시 시작되는 M세대 1학년의 학교생활이 기다렸던 아이들의 마음만큼 ‘신나게’ 이어질 수 있길 바라봅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송다영 김수련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