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미국의 ‘중국산’ 표기 요구 거부… WTO 믿고?

입력 2020-09-17 13:41 수정 2020-09-17 16:2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현지시간) 백악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에 따른 보복 조치로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없애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이 자국 수출품에 ‘중국산’(메이드 인 차이나) 표기를 의무화하도록 한 미국 정부에 반대 입장을 공식 통보했다. 친중 성향의 홍콩 정부는 미 정부 방침에 한 달 넘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세계무역기구(WTO)가 미·중 관세 분쟁에서 중국 손을 들자마자 행동에 나섰다.

에드워드 야우 홍콩 상무장관은 자국 수출품에 대한 중국산 표기 의무화 방침을 철회해달라는 서한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전달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야우 장관은 “독립적인 관세 지역인 홍콩의 지위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일방적인 시도는 WTO 규정에 위배된다”며 “우리는 WTO의 독립적인 회원”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는 지난달 연방 관보에 오는 25일부터 홍콩에서 만든 제품은 원산지가 중국임을 표시해야 한다고 고시했다. 홍콩 기업 제품에도 중국과 같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에 따라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달리 대우해왔지만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특별지위를 박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7월 홍콩 정상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홍콩은 이제 중국 본토와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며 “특혜도 없고 경제적 대우도 없고 민감한 기술 수출도 없다”고 했었다.

홍콩산 제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 표기를 의무화하는 시점은 수출업자들의 준비 기간 등을 감안해 일단 다음 달 9일로 늦춰진 상태다. 홍콩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조업 거점이었지만 지금은 직접 거래보다는 재수출 중심지로서 역할이 크다. 현재 홍콩에서 선적된 물품의 약 1% 정도만 홍콩에서 생산된다.

홍콩은 지난달 미 정부 방침이 공개되자 즉각 반발하며 WTO에 제소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다 WTO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 관련 분쟁에서 중국 입장에 서자 곧바로 미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2018년 중국 정부의 부당 보조금 지급,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매겼다. 중국은 WTO에 제소했고 1심에 해당하는 패널 조사에서 ‘미국의 무역규정 위반’이라는 결과를 받아냈다.

WTO의 이번 판단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나라 제품에 부과한 관세에 대한 첫 판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