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회가 왔다. 그걸 잡아라.”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숭의아레나(인천축구전용경기장) 관중석에 16일 다시 서포터들이 내건 걸개가 걸렸다. 경기 승패에 따라 꼴찌를 벗어날 수도 있는 날이었다. 태풍 때문에 걷어냈다가 다시 걸었을 뿐이지만 앞서 이 걸개를 걸었던 지난 홈경기 수원 삼성전과 묘하게 상황이 겹쳤다.
인천은 이날 FC 서울과의 하나원큐 K리그1 2020 21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송시우의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따냈다. 이날 승리로 인천은 같은 날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친 수원 삼성과 승점 18점으로 동률을 이뤘다. 득실차에서 뒤져 리그 최하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의 잔류 경쟁이 이날 승리로 큰 힘을 받게 됐다.
전반 중반까지 경기는 팽팽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서울은 지난 경기에서 출전하지 않았던 김진야를 오른쪽에 세우고 조영욱과 윤주태를 함께 전방에 놓으며 인천의 뒷공간을 공략할 의도를 내비쳤다. 인천은 아길라르와 무고사가 최전방에서 위치를 바꿔가며 상대를 위협했고 김도혁이 역습 시마다 왼쪽 측면으로 빠져 공간을 노렸다.
서울은 전반 동안 중원에서 오스마르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인천 아길라르가 뿌려주는 전진패스가 득점 기회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막아내는 역할이었다. 인천 역시 수비적으로 서울이 지난 경기에서 보여줬던 측면 뒷공간 침투를 대비해온 모습이었다. 조영욱과 윤주태가 서울의 전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흔들기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인천은 공격수 무고사가 전반 아길라르의 패스로 오픈 찬스를 잡았지만 슈팅이 옆으로 빗나갔다. 무고사는 전반 막바지에도 상대 수비의 패스 실수를 틈타 단독 찬스를 맞았지만 양한빈 골키퍼가 끝까지 따라가며 막아냈다. 서울도 한찬희가 동료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헤딩으로 떨궈준 공을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인천의 오른쪽 골대에 맞고 튕겨나왔다.
후반 들어 양 팀은 승부수를 걸었다. 지난 라운드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한승규와 같은 경기 맹활약한 기성용을 한찬희, 김진야와 바꿔 투입했다. 인천 역시 ‘시우타임’으로 유명한 송시우를 김준범 대신 넣으며 공격을 강화했다. 이후 서울이 인천 골키퍼 이태희의 펀칭 실수를 틈타 상대 골망을 흔들었으나 영상판독 결과 반칙으로 득점이 취소됐다.
그러나 서울의 승부수는 예상 못한 변수를 맞았다. 지난 경기에 이어 교체 투입돼 날카로운 패스를 보여주던 기성용이 공을 몰다가 갑자기 충격을 받은 듯 멈춰섰다. 결국 기성용은 후반 20분 정한민과 교체됐다. 오랜 기간 괴롭혔던 발목 부상이 재발 가능성이 우려됐으나 경기 뒤 김호영 감독은 “발목 부상 재발이 아닌 근육 부상”이라고 밝혔다.
반면 인천의 승부수는 빛을 발했다. 교체 투입된 송시우는 후반 27분 역습 상황에서 아길라르와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골문으로 침투한 뒤 다시 아길라르가 감각적으로 찔러준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았다. 송시우는 양한빈 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면서 공을 침착하게 찍어올려 골망을 갈랐다. 승부의 추가 기우는 순간이었다. 송시우는 손목을 가리키는 특유의 ‘시우타임’ 세리머니로 골을 자축했다.
득점 직후 인천은 수비 숫자를 늘리며 잠그기에 나섰지만 날카로움은 살아있었다. 아길라르가 후반 막판 프리킥 찬스에서 올린 공을 김연수가 그대로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서울 골대에 맞고 나왔다. 서울은 기성용을 빼면서 교체카드를 모두 소진한 게 뼈아팠다. 윤주태가 날린 회심의 슈팅이 인천 이태희 골키퍼에 막히는 등 불운도 이어졌다.
인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