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와 ‘영끌’의 역설, 이들이 ‘죽쑨’ 한국경제 살렸다

입력 2020-09-16 18:26 수정 2020-09-16 18:3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맞서 금융·부동산 분야 생산이 나홀로 성장을 하면서 전체 한국경제를 받쳐주고 있다. 정부가 투기적 성향이 강하다며 단속을 천명한 ‘빚투(빚내서 투자한다는 뜻)’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의미)’이 오히려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일보가 1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코시스’에서 서비스업 업종별 생산 추이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 2월부터 기존 숙박업, 음식점 등 자영업 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비율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 결과 2월에는 서비스업 생산이 전월 대비 3.5% 포인트 감소했고, 3월에는 4.4% 포인트 감소로 2000년 1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서비스업 가운데 비중이 크지 않았던 금융·보험과 부동산 업종의 생산은 갑자기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하하고, 정부의 잇단 대책에 따른 부동산 거래가 늘기 시작한 2분기를 지나며 더욱 두드러졌다. 금융·보험업 생산 증가율의 경우 4월 9.2%에서 7월 14.8%로 늘었고 부동산업 생산 역시 같은 기간 9.8%에서 12.1%로 증가했다. ‘동학개미운동’과 ‘부동산 패닉 바잉’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점이다.

이들 업종의 서비스업 생산 기여도도 부쩍 뛰었다. 금융·보험업은 서비스업 생산에 끼친 기여도가 지난 1월 0.61% 포인트에서 7월 2.32% 포인트로 4배 가량 급증하며 다른 업종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게다가 국내 산업의 중추인 제조업의 경우 2분기 매출액 증가율이 역대 최저인 -12.7%였다. 결국 제조업 서비스업이 침체하는 와중에서 빚투와 영끌 업종의 활황으로 전산업 생산이 큰 타격 없이 버틸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 관계자는 “주식투자 열풍과 부동산 거래가 급증한 게 이들 업종의 성장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최인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비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 (금융·보험업 등이) 다른 산업보다 비교적 건재하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돈이 소비·투자를 통한 거래 대신 부동산·주식 등 자산 시장에 몰리면서 실물경제에는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펀더멘탈이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게 아니라, 금융심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나온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유동성 투입에 따라 자산 가격과 거시 경제 상황 간 괴리가 점차 심해지고 있는 탓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