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에 세종문화회관 별관 짓는다고 철거하래요”

입력 2020-09-16 18:17 수정 2020-09-17 08:47

서울 영등포역 인근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급식 사역을 해온 정갑준(69)노변교회 목사는 16일 시름에 빠져 있었다.

최근 구청에서 무료급식 장소인 컨테이너 3채를 철거하라는 공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벌써 6번째 철거 요구다.

구청은 교회가 구(區)소유 토지에서 무료급식을 해왔다며 사용비 4773만 7870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노숙인에게 배식하는 정갑준 목사

정 목사가 노숙인 사역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1995년. 신학교 재학 중 어떤 사역을 할 지 고민했다.

관악산에서 금식기도를 하다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97년 11월 손수레를 기증받아 국수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첫날 8그릇에서 1년 뒤 IMF 때는 800그릇까지 늘었다.

식사 전에 꼭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에 밥이나 빨리 달라고 불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술을 먹고 싸움하고 예배까지 방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그들을 정성스레 돌봤다.

빵과 우유, 과일 등도 후식으로 제공했다. 아파트 주민이 버린 옷을 깨끗이 빨아 전달했다.


몸이 아픈 노숙인을 안수기도로 고치기도 했다. 정 목사는 결혼을 위해 마련한 집을 팔아 급식비에 보탰다.

무료급식 사역이 알려지면서 2002년 3월 서울지검 남부지청과 영등포경찰서 직원들이 헌금한 300만원을 비롯한 후원금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했다. 눈비를 맞지 않으며 급식을 먹고 예배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거리에서 밥을 먹고 예배를 드려야할 처지에 놓였다. 컨테이너 박스를 옮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구청은 1년 전 전기와 수도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정 목사는 급식할 자리를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구청의 답변은 불법건축물은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엔 주택가인 이곳에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건축하겠다고 게시했다.

정 목사는 불쌍한 노숙인들이 눈 비를 피해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노숙인과 함께 컨테이너에서 거주해온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극소수 노숙인들만 무료 급식이 가능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밥 한 끼 따듯하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구청에서 저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 주고 아파트 대출도 알선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제 안위보다 급식사역이 우선이다. 부디 지금처럼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이어 “노숙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던 역사 현장이 사라지지 않도록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한 노숙인은 “공무원들이 오면 도망가곤 한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하고 신원 조회를 하기 때문이다. 밥 한끼 먹는게 힘들다”고 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