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등에서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지역화폐가 오히려 경제 활성화나 고용창출 없이 경제적 순손실만 키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역화폐가 일종의 ‘보호무역’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일부 소상공인에게만 도움을 줬을 뿐 국가 경제에는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역화폐가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해 왔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국책연구기관이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은 15일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송경호·이환웅 조세연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지역화폐 발행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관측되지 않았다. 지역화폐 발행이 해당 지역의 고용을 증가시켰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란 대형마트가 아닌 지역의 소상공인 가맹점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재화다. 각 지자체에서 골목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지역화폐를 발행했거나 계획 중인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229곳으로 전체 지자체(243곳)의 94%를 차지했다. 연간 발행 규모로만 9조원에 달한다.
최근 이재명 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이 심해지자 20만원 충전 시 5만원을 얹어주는 ‘추석 경기 살리기 한정판 지역화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늘려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취지에서다.
"일부 소상공인에 도움되지만 지역 전체로는 손해"
조세연은 지역화폐 발행으로 발행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고는 평가했다. 지역화폐를 쓸 수 없는 대형마트 매출액이 소상공인에게 이전되고, 지역 내 소비자의 지출이 외부로 유출되는 걸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다.그러나 조세연은 지역화폐가 발행 비용, 소비자 후생 손실,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예산 낭비, 사중손실(순손실) 등 부작용만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사중손실이란 정부의 가격 통제 등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균형이 최적이 아닐 때 발생하는 경제적 순손실을 의미한다.
조세연이 통계청 통계빅데이터센터(SBDC)를 통해 2010~2018년 3200만개 전국 사업체의 전수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내총생산(GRDP) 1% 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동네마트·식료품점 매출만 기존 매출 대비 15% 증가하고, 나머지 업종의 매출 증가는 0%에 그쳤다. 동네 구멍가게 매출만 소폭 올랐을 뿐 지역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 데는 부족했다는 의미다.
오히려 예산 낭비 등의 후유증을 고려하면 지역화폐는 더 큰 손해를 남긴다. 조세연은 지역화폐 운영에 사용된 부대비용을 산정한 결과 경제적 순손실이 올해만 226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역화폐 발행 관련 인쇄비·금융수수료(전체 발행액의 2% 수준) 1800억원과 9000억원의 중앙·지방정부 보조금의 경제적 순손실 460억원을 더한 수치다.
조세연은 “지역화폐는 국가 간 무역장벽 및 보호무역 조치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 후생 감소나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증가로 사회 전체 후생을 감소시킨다”고 꼬집었다.
지역화폐는 소비자들의 지출이 지역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을 늘리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지역 내 소비는 늘어나지만 지역 외 소비는 줄고 국가 전체적으로 소비가 순환하는 것을 막아 경제적 비용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국고 손실·현금깡·물가상승 등 부작용도 있어
조세연은 지역화폐가 나라 곳간에도 직접적인 손실을 끼친다고 봤다. 대부분 지자체가 액면가 대비 10% 정도 할인해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중앙‧지방정부가 메꾸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연은 여기에 드는 비용만 약 9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조세연은 이외에도 지역화폐가 여러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를 현금으로 바꾸는 ‘현금깡’ 시장이 만들어지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지자체의 불법거래 단속 비용을 증가시키고, 행정력 낭비 등을 일으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떨어뜨린다.
또 지역화폐가 특정 업종에만 몰리면서 관련 업종의 물가를 끌어올리고, 대형마트보다 비싼 동네마트를 이용하면서 소비자 후생도 감소한다. 지역화폐가 가맹점이 비슷한 온누리상품권이나 현금의 대체 수단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부작용으로 지목됐다.
조세연은 “지역화폐의 현금깡 시장을 단속하는데 상당한 행정력과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 국가 전체적인 후생 수준을 저해하는 지역화폐 발행을 중앙정부가 국고보조금을 통해 지원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 특정 시점·지역 한정해 활용해야”
조세연은 중앙정부가 특정 시점과 특정 지역에 한정해 지역화폐 발행을 보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세연은 “관광산업과 같은 대면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지자체의 경우 코로나19 여파로 타 지역보다 더 큰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런 특정 지역에 한정해 지역화폐 발행 보조금을 국고로 지원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세연은 “지역화폐 발행이 시장 기능을 왜곡시킨다는 측면에서 지역화폐를 통한 간접 지원이 아닌 지역 내 사업체에 대한 직접 지원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누리상품권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도 제시됐다. 조세연은 “정부가 관리하는 온누리상품권으로도 소상공인 지원이 가능한데도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우후죽순 발행하는 것은 지역 정치인들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비효율·후유증이 큰 지역화폐 발행을 축소하거나 통폐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