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를 집어삼키는 대형 산불이 미국 대선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이어 산불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서부 해안을 강타한 산불이 대선 이슈가 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말 불붙기 시작한 미국 서부 산불로 최소 35명이 숨졌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해 수백만 에이커를 불태웠다.
미 전국합동화재센터(NIFC)에 따르면 남한 면적의 약 20%가 불탄 것으로 추산된다. 산불로 집을 잃거나 대피한 사람도 수 천명에 이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초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온도가 높아지고 가뭄이 늘어나면서 산불 발생이 잦아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산불 현장을 방문해 “낙엽을 치우지 않아 마른 낙엽들이 땅에 있으면 불길의 연료가 된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 가능성을 부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매클레런 공원을 방문해 산불 브리핑을 들었다.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포함해 지역과 연방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웨이드 크로풋 캘리포니아주 천연자원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가 과학을 무시하고, 현실을 회피하면서 식물 관리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캘리포니아 주민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날씨가 점점 시원해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지켜보자”라고 답했다.
크로풋 장관이 “과학이 당신(트럼프) 의견에 동의하기를 바란다”고 예의바르게 반격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나는 과학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리핑에 앞서 매클레런 공항에 도착한 직후 대형 산불 원인을 민주당 주지사들의 산림관리 부실로 몰아 붙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년 동안 마른 낙엽들이 땅에 깔려 있으면 이것들은 화재의 연료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 서부의 대형 산불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콜로라도 대학의 화재 과학자 제니퍼 발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낙엽 발언에 대해 “정말 화가 난다(infuriating)”고 AP통신에 말했다. 발치는 “산림관리는 이 문제의 잘못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5건의 역대 최악의 산불들은 지난 3년 안에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또 스탠포드대학의 기후·산불연구자 마이클 고스는 섭씨 1도 기온이 올라가고 강수량이 30% 줄어들면서 지난 40년 동안 가을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두 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을 “기후방화범”이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후보는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자연사박물관 앞에서 한 연설에서 “이 순간 필요한 것은 희생양이 아니라 리더십”이라며 “트럼프의 미국에서 우리가 안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후보는 이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에 투표해 4년 더 임기를 주면, 미국이 더 불탄다고 해도 놀랄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했다.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기후변화에 더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활동가들은 바이든 후보가 기후변화 이슈를 더욱 공격적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것에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