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과거와는 너무 다른 경기였다. 강등 위기에 빠진 친정 수원 삼성을 구해내는 임무를 맡은 신임 박건하(49) 감독의 표정은 마스크로 가린 와중에도 어두워 보였다. 선수 시절 수차례 우승컵을 따냈던 명가 수원이 맞수 FC 서울과의 ‘슈퍼매치’를 무기력하게 내주는 걸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던 직후였다.
박건하 수원 감독은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20라운드 서울과의 경기에서 2대 1로 패한 뒤 기자회견장에서 “어려운 데뷔전이었다”면서 “서울을 잡으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다 생각했으나 뒷심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벌전에서) 진 것에 대해 팬들에게 죄송스럽다”면서 “(패배로부터 팀을) 잘 추슬러서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수원의 새 사령탑으로서 박건하 감독에게 주어진 건 악조건뿐이다. 지난 8일 부임한 이래 닷새 만에 치른 경기였다. 정규리그는 전체 22라운드 중 서울전까지 20라운드를 치른 상태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다 세더라도 7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수비 핵인 헨리가 지난 경기 뒤 4주 부상을 입어 누워있고 미드필드에서 맹활약한 고승범, 지난 시즌 득점왕 타가트도 부상이다.
전술적 변화의 여지가 적다는 점 역시 박건하 감독을 괴롭힌다. 박건하 감독은 “사실 기본적으로 포백을 기반으로 하는 걸 우선 원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무리이지 않을까 싶어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팀이 전술적으로 오랫동안 스리백을 썼다. 선수들이 스리백에 특화된 면이 있어 전술 변화를 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박건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건 수원 레전드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수원이라는 구단에는 자부심이 있다”면서 “수원 출신으로서 이 위기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도전을 해보고 팀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기에서는 불운도 따랐다. 주장 염기훈이 전반 페널티킥으로 수원에서의 70째 골을 넣었으나 이와 동시에 수비 한 축인 조성진이 부상으로 물러나면서 교체 선택지가 줄었다. 서울이 후반 시작과 함께 기성용과 박주영을 투입하며 경기 흐름을 바꾸는 동안 박건하 감독은 2명밖에 남지 않은 교체카드로 그나마 부족한 벤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고민해야 했다.
박건하 감독은 “공격에서 계획했던 교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선수들이 의욕은 있었지만 전반에 많이 뛰다 보니 후반에 체력적으로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면서 “(반등할) 다른 방법은 없다. 결국 선수들과 더 시간을 갖고 같이 헤쳐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원은 불과 사흘 뒤인 16일 포항 스틸러스와 다음 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주어진 기간이 워낙 짧아 부상 선수들의 복귀도, 새 전술 체화도 어렵다. 이날 패배로 수원은 무승부를 거둔 리그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와 승점차가 2점으로 좁혀졌다. 이제 현실적으로 강등 걱정을 해야하는 처지다.
박건하 감독은 수원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단호하게 “그런 상상은 한번도 하질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저 혼자만의 노력보다도 수원의 모든 지지자,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서 이겨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건하 감독은 “모든 선수가 오랫동안 경기에서 이기지 못해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면서 “포항전이 반등할 중요한 경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다행히 타가트는 조만간, 고승범도 곧 돌아오지 않을까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지금 있는 선수들로 그 선수들 돌아올 때까지 잘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