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산불 사태로 대한민국 면적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불에 타는 등 수난을 겪고 있는 미국 서부 지역에서 ‘극좌파가 불을 지르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겹치며 당국이 사태 수습에 애를 먹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서부 지역의 산불 사태가 악화되는 가운데 온라인 극우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QAnon)을 중심으로 “‘안티파(극좌 성향의 반(反)파시즘 단체) 회원들이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거짓주장이 퍼지고 있다.
음모론은 지난 10일부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천명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6명의 안티파 회원들이 오리건주 더글러스 카운티에서 방화 혐의로 체포됐다’는 유언비어를 공유했다. 유언비어를 공유한 이들 중에는 폴 로메로 전 오리건주 공화당 상원의원도 포함됐다. 전직 의원까지 가세한 음모론 퍼나르기에 더글러스 카운티 보안관실은 업무가 마비됐다. 유언비어의 사실 여부에 대한 문의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음모론에 휩쓸린 일부 주민들은 민간인 검문소까지 만들었다. 멀트노머 카운티 보안관실은 오리건주 포틀랜드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검문소를 세워 지역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좌파 군중과 방화범의 침입으로부터 자기 집을 지키겠다며 당국의 대피령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관실은 주민들이 민간 검문소를 만들어 다른 시민들을 멈춰세우는 것은 불법이라며 자제를 당부했다.
미 연방수사국(FBI)까지 나서 “문제의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확산을 막아달라고 당부했다. FBI 포틀랜드 지부는 “극단주의자들이 오리건에서 산불을 내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며 “가짜뉴스가 퍼지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방화로 추정되는 사건은 있었지만 이들이 극좌파와 연계돼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오리건주 애슐랜드에서 일어난 화재의 경우 40대 남성의 방화로 추정되며, 경찰 역시 그를 체포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특정 세력과의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큐어넌발 극우 음모론의 피해는 미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음모론이 온라인을 통해 세계 각지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은 최근 독일에서 발생한 코로나 반대 ‘노 마스크’ 시위를 주도한 세력의 일부도 큐어넌발 음모론을 받아들인 현지 극우파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는 사기이며, 바이러스로 공포심을 조장해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한 음모’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실제 군중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