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는데 기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 있을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디팬딩챔피언 리버풀을 안방 안필드에서 사지까지 몰아넣을 뻔한 뒤였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기자회견장에 앉은 마르셀로 비엘사(65) 감독은 통역을 통해 스페인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했다. 아까운 패배 탓인지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수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리그의 감독으로서 화려한 귀환식을 치른 것을 생각하면 의아할 수도 있는 반응이었다.
비엘사 감독이 이끄는, 돌아온 리즈는 강했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 챔피언십 우승팀이자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EPL) 승격팀 리즈 유나이티드는 12일(현지시간) 지난 시즌 EPL 우승팀 리버풀과 치른 안필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막판 내준 페널티킥 결승골로 4대 3으로 아쉽게 패했다. ‘괴장’으로 소문난 비엘사 감독의 리즈는 경기 내내 지칠 줄 모르는 압박과 날카로운 역습으로 리버풀을 괴롭혔다.
이날 정규시간 종료 2분 전 영입생 로드리고가 엉겁결에 페널티박스 안에서 저지른 무리한 태클만 아니었더라면 이날의 승자는 사실상 리즈였다. 승격팀으로서는 상당한 액수인 2700만 파운드(약 411억원)를 지불하고 데리고 온 선수였기에 허탈함은 더욱 컸다. 그러나 비엘사 감독은 냉정하게 팀 전체의 잘못이 더 크다 지적했다. 그는 기자단의 질문에 “선수가 실수 하나 저질렀다 해서 패배를 단지 그 선수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엘사 감독은 “로드리고와 경기 결과가 직접 관련은 없다”면서 “양 팀 간 불균형을 만든 건 (경기장에서 벌어진) 다른 행동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널티 전에도 리버풀은 득점 기회를 잡았다. 골은 다른 기회에서도 터질 수 있었다”면서 “경기 전체적으로는 리버풀이 우월했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실수 탓을 할 것 없이 경기를 더 잘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비엘사 감독은 경기에 임한 선수들의 태도를 칭찬했다. 십수 년 만의 1부 승격 뒤 치른, 그것도 디펜딩챔피언과의 첫 경기에서도 굴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는 “선수들은 침착했다. 침착하게 경기를 치렀고 자신감 넘치게 끌고 갔다. (리버풀을 상대로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걸 보여줬다. 서로를 당황하지 않도록 붙잡아줬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이러한 (높은) 수준에서는 실수는 곧 골로 이어진다. 우리가 4골을 실점했단 걸 무시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있었던 골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