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두고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느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1차처럼 전 국민에게 주라는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난지원금이 다시 보편 지급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정부 재원이 무한하다면 모두에게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현재 위기는 과거와 달리 돈이 있어도 소비를 못하는 ‘보건 위기’이며, 재원도 한정적이다. 따라서 지원금을 줘도 쓰지 않을 계층에 줄 돈을 어려운 계층에 몰아주는 것이 더 낫다. 결국 선별 지급이 답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보편 지급 회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3~4차 재난지원금 발생을 대비해 하루 빨리 정밀한 선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위기 “돈 있어도 못 쓰는 보건 위기”
정부가 1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한 건 경기 부양과 신속성 때문이다. 경기 부양 효과는 두 가지를 기대했다. 저소득층은 소득 하락을 보완하고, 중산층 이상은 소비에 나서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신속성도 중요했다. 정부는 일회성으로 막대한 현금을 지급한 경험이 없었다. 이에 일부 계층을 이른 시일 내 선별할 시스템이 전무했다. 이런 이유로 전 국민 지급이 결정된 것이다.그러나 1차 재난지원금의 경기 부양 효과가 기대 이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는 과거 경제 위기와 전혀 다른 ‘보건 위기’인 탓이다. 돈이 없어 소비를 안 하는 것보다 감염 우려로 ‘대면 서비스’를 피하는 것이 경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상위 20%(소득 5분위)의 소비는 오락·문화(35.4%), 교육(19.2%), 의류·신발(-13.5%), 음식·숙박(-7.6%) 등에서 감소했다. 해외에서도 고소득층의 소비 심리 위축이 경기침체를 부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 라지 체티 교수 연구팀은 최근 고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저소득층의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소득층 지출 감소가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얘기는 코로나19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감염 우려로 여력이 있음에도 돈을 쓰지 않는 계층에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1차 재난지원금 지급 후 지역별 매출 증가를 보면 고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의 상승 폭이 적고, 상승세도 길지 않았다. 한국신용데이터의 소상공인 매출에 따르면 강남구는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5월 초(5월 4일~5월 10일) 매출이 전년 대비 94%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후 8월 초(8월 10일~8월 16일) 전년과 비슷한 100%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음 주 75%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면 도봉구는 5월 중순(5월 18일~5월 24일) 전년 대비 113% 수준까지 매출이 상승했고, 8월 중순(8월 10일~8월 16일)까지 80~100%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8월 말(8월 24일~8월 30일) 78% 수준으로 감소했다.
결국 중산층 이상은 현재 ‘지원금’을 받아도 소비를 늘리지 않으며, ‘소비→경기부양’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추가 소비가 아닌 기존 소비를 대체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중산층 이상은 가족원 수가 많아 1차 때 더 많은 지원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에게 줄 돈을 소상공인, 저소득층 등에 곧바로 몰아주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는 “지역별 재난지원금 효과를 보면 소득이 낮은 지역의 소상공인 매출 증가율이 더 높고 오래 지속되는 측면이 있다”며 “현재 위기는 고소득 가구의 대면 서비스 축소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취약계층 맞춤 지원이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보편 회귀 아닌 '선별 연구' 논쟁 집중해야
코로나19 장기화로 추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선별 지급이 더 효과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보편, 선별 논쟁에서 벗어나 선별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2차 재난지원금은 선별 기준 설정에 실패했다. 보편 지급의 장점인 민심 얻기를 포기 못한 당청이 통신비 등 보편 지급 정책을 끼워 넣으며 이도 저도 아닌 지원금이 됐다. 또 1차에서 문제로 제기 된 선별 시스템 미비가 2차에서도 해결되지 못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정부가 1차를 보편 지급한 후 선별 지급 연구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며 “여러 선별 시나리오를 만들고 국민과 합의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장단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선별 시스템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기존 정책 확대 등을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빠른 시일 내 선별 기준선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긴급고용안정지원금,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기존 제도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낫다”며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 사각지대 정보를 파악하고 선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난지원금은 일회성이라는 특수성도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체 복지 체계와 엮어 정치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남 부연구위원은 “재난지원금은 긴급한 사태 때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수당”이라며 “기본소득 등 일반적인 복지 정책 문제와 섞어서 본질을 흐리는 논쟁을 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