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보툴리눔톡신(일명 보톡스) 균주 도용과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둘러싸고 5년간 끌어온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의 분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톡스는 주름 개선과 신경·근육질환 치료에 쓰이는 주사제다.
2016년 4월 메디톡스가 자사의 보툴리눔 균주를 누군가 반출해 대웅제약에 전달했다며 수사 의뢰하면서 시작된 양측의 다툼은 국내와 미국에서 민·형사상 소송전으로 비화했고 그 중 일부는 아직 진행 중이다.
메디톡스는 특히 지난해 1월 미국내 판매사인 엘러간과 함께 대웅제약 및 미국 판매사 에볼루스를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해 업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양 측은 각자의 논리를 내세우며 한 치 양보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승자도 패자도 없이 상처만 남을 무모한 소송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성공적인 방역 대처로 K 바이오의 위상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해외에서의 국내 기업간 난타전은 ‘제살 깎아먹기’라는 것이다. K 바이오의 위상과 국가 신인도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분쟁이 오리지널 보톡스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미국의 글로벌제약기업 엘러간의 지배력만 더 키워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7월 ITC의 예비판결로 메디톡스가 일단 승기를 잡은 듯 보인다. ITC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결정하고 대웅제약의 보툴리눔제품 ‘나보타(미국 판매명 주보)’에 대해 10년 수입금지 명령을 권고했다.
하지만 지난 8월 공개된 ITC의 예비결정문에 대해 미국 내 전문가그룹의 반박 의견들이 이어지고 있어 오는 11월 6일로 예정된 본판결에서도 같은 결정이 나올 지는 미지수다.
대웅제약 측은 “본 판결에선 반드시 결정을 뒤집을 것이며 우리가 최종 승리할 것”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1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ITC 예비결정문에는 판결에 대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발견된다. 우선 증인 심문과정에서 메디톡스 측이 전문가로 선임한 폴 카임 미국 노던애리조나대 교수 조차 “균주 동일성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 6개의 공통 SNP(단일염기다형성: 염색체의 단일 부위에서 여러가지 DNA 염기들 중 하나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돌연변이) 정보만으로는 대웅제약의 균주가 메디톡스의 균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한 바 있다고 명기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C 행정판사는 “두 제조사 균주의 유전자가 상대적으로 유사하고 토양에서 균주를 채취했다는 대웅제약 주장의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는 주장을 토대로 영업비밀의 유용을 추론해 10년간 대웅제약 제품의 미국내 판매금지를 권고하는 예비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유전자 분석 전문가인 캘리포니아대 바트 C 와이머 교수는 예비판결의 과학적 분석에 대한 전문가적 의견을 최근 자신의 트위터와 링크드인에 올렸다.
와이머 교수는 특히 ITC 예비결정의 판단 근거로 제시한 폴 카임 교수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해 “논리 비약”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그는 “미생물 포렌식(microbial forensics) 방법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고 이 방식의 한계에 주의해야 한다. 또 추적 가능성과 연관성을 분석하는데 혼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예비결정 판단을 위해 양측 균주의 SNP 분석을 사용했는데, SNP는 정확한 계통 관계(Genealogical relationship) 없이는 관련성을 정확히 나타내지 않으며 전체 염기서열분석(WGS)이 SNP 분석 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영업비밀법’ 최고 권위자인 로저 M 밀그림 전 뉴욕대 교수도 “메디톡스가 자사 균주의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은 미국의 영업비밀법상 메디톡스 균주의 ‘경쟁 우위성’과 ‘비밀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영업비밀’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불법행위법 757호에 따르면 ‘일반에 공개되고 업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물질은 영업비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에 ITC의 예비결정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밀그림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익 의견서를 지난달 18일 ITC위원회에 제출했다.
밀그림 교수에 따르면 메디톡스의 균주는 1920년도에 발견된 이후 2001년까지 수십 년간 제약없이 널리 이전돼 왔고 인터넷에 전체 유전자 정보가 공개된 ‘Hall A hyper’에서 유래돼 ‘영업 비밀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메디톡스 균주는 다른 ‘Hall A hyper’ 균주와 유의미한 차이가 없어 ‘경쟁 우위성도 없다’는 게 밀그림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예비결정에서 메디톡스의 균주가 경쟁사 균주보다 경쟁 우위에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았음에도 영업비밀법에 의해 배제 및 정지명령을 내렸고 이런 잘못된 결정으로 미국 내 제품들간 경쟁력을 약화시켜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공익 의견서 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달 초에는 미국 피부과 의사 30여명이 집단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제품 ‘주보’의 판매는 고가의 엘러간(메디톡스의 미국내 판매사) 보톡스 제품의 독점, 불공정 경쟁을 막아 환자는 물론 의사와 보험회사 등 기관에 이익을 줄 것”이라며 “저가의 보톡스 제품을 찾는 미국 환자들의 결정권을 지켜달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보’가 미국에서 계속 판매되도록 해달라”고 탄원했다.
이처럼 ITC 예비결정과 관련해 과학적 분석법에 대한 우려, 법률적 오류 지적, 미국 피부과 의사들의 독점 방지 및 경쟁제품 보호 주장 탄원서 제출, 미국 기업의 불공정경쟁에 대한 이의 제기 등이 ITC위원회에 제출되면서 11월 열리는 본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ITC 행정판사의 예비결정은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지지 않는 권고사항이다. ITC위원회는 본판결에서 예비결정의 전체 또는 일부에 대해 파기(Reverse), 수정(Modify), 인용(Affirm) 등의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고 다시 대통령의 승인 또는 거부권 행사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ITC위원회는 제출된 전문가 ‘공익 의견서’ 등을 참고해 예비결정에 대한 검토(Review) 진행 여부를 오는 21일쯤 판단할 예정이다.
일각에서 ITC 예비판결에 대한 반격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의 타당성에 대해 심도깊은 분석이 있어야 하나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반박 의견들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경우 ITC위원회의 최종 판결에서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16년 메모리반도체 기업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낸 특허침해 소송에서 ITC의 예비결정은 SK하이닉스가 넷리스트 특허 일부를 침해했다고 판단했으나 최종 판결에서는 SK하이닉스의 특허 침해가 없다고 판단해 넷리스트가 패했다.
반대로 2011년 삼성전자는 애플을 상대로 ITC에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예비결정에서 애플의 특허침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최종 판결에서는 애플의 특허침해를 인정해 삼성이 최종 승소했다.
11월 ITC의 최종 판결이 나오더라도 패한 쪽은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판결 불복시 60일 이내에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 항소할 수 있다. 따라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극적인 타협이 있지 않는 한 보톡스 균주 출처를 둘러싼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메디톡스는 1979년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미국 위스콘신대 실험실에서 ‘Hall A hyper’균주를 이삿짐에 싸서 한국에 들여왔고 메디톡스 창업주인 정현호 박사가 은사인 양 청장으로부터 독점적으로 공여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메디톡스는 이 균주를 바탕으로 2006년 보톡스 제품(메디톡신)을 출시했고 태국 일본 등 세계 60여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대웅제약은 경기도 용인 등 전국 12개 지역 토양에서 분리한 3개의 보툴리눔 균주 중 하나를 선정해 제품으로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2014년 첫 보툴리눔 제품 ‘나보타’를 출시했고 미국 유럽 등 8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