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왕리 사고 피해자는 도로 위에, 가해자는 차 안에”

입력 2020-09-11 10:23 수정 2020-09-11 10:35
지난 9일 인천시 중구 을왕동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의 블랙박스 영상. 도로 위에 부상을 입은 피해자(왼쪽 사진 붉은색 동그라미)가 누워있다. 오른쪽은 피해자 인근에 정차한 가해 차량의 사진. YTN 캡처

50대 치킨집 사장의 목숨을 앗아간 음주운전 사고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현장을 지나가던 목격자의 차량에 찍힌 영상인데, 피해자가 도로에 쓰러져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YTN은 11일 이른바 ‘을왕리 음주운전 사고’의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사고 현장을 발견한 목격자가 다급히 차를 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목격자의 차량 바로 앞에는 배달통이 널브러져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피해자가 쓰러져 있었다.

가해 차량은 피해자와 가까운 곳에 정차해 있었다. 피해자는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고, 배달통과 오토바이 잔해 등은 도로 한가운데에 그대로 있어 2차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와 동승자는 이를 방치한 채 자신들의 차 안에 앉아있었다. 목격자는 “일단 119에 신고를 한 뒤 피해자 뒤에 차를 대놓고 차량 통제를 했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2차 사고가 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구급차는 목격자가 신고한 지 6~7분쯤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가해 운전자와 동승자는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 특히 동승자는 뒷짐을 진 채 건너편 인도 쪽으로 이동한 뒤 응급처치를 받는 피해자 쪽을 바라봤다. 목격자는 “구급대원이 오고 뒤이어 경찰이 오니까 (가해 운전자와 동승자가 차량 밖으로) 나와서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더라”며 “아주 당당했다”고 주장했다.

음주운전 사고의 가해자(왼쪽)와 동승자. YTN 캡처

이 사고는 지난 9일 오전 0시55분쯤 인천시 중구 을왕동의 한 편도 2차로에서 발생했다. 여성 A씨(33)는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중앙선을 넘은 뒤 마주 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 운전자 B씨(54)는 크게 다쳐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이후 피해자의 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가해 운전자와 동승자의 엄벌을 촉구했다. 딸은 “지난 새벽 아버지는 저녁부터 주문이 많아 저녁도 못 드시고 마지막 배달이라며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면서 “아버지는 책임감 때문에 가게 시작 후 늘 치킨을 직접 배달하셨다. 일평생 단 한 번도 열심히 안 사신 적 없는 아버지를 위해 살인자가 법을 악용해 빠져나가지 않게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 청원은 11일 오전 10시9분 기준 28만3290명의 동의를 받았다.

경찰은 A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 운전 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사 과정에서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을 넘는 0.1% 이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 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동승자에 대해서도 음주운전 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