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코로나 위험 알고 있었다” 책 낸 기자에 ‘보도 왜 안 했나’ 비판도

입력 2020-09-10 17:26 수정 2020-09-10 17:5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가 국가 안보를 뒤흔드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올해 초부터 알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오판한 게 아니라 혼란을 막기 위해 고의로 위험성을 은폐하고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사임하도록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보도로 유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분노(Rage)’에 등장하는 폭로 내용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은 9일(현지시간) 오는 15일 출간 예정인 이 책의 원고 일부를 사전 입수해 보도했다. 우드워드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지난 7월 말까지 트럼프를 총 18차례 직접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그의 동의 하에 책에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2월 7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는 독감보다 더 치명적”이라며 “매우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는 “코로나19가 독감보다 5배나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가 코로나19 관련 첫 기자회견을 열었던 2월 26일보다 20일 가까이 빠른 시점이다.

트럼프는 지난 1월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과 매슈 포틴저 당시 부보좌관 등으로부터 명백한 코로나19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도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오브라이언은 “임기 중 가장 큰 국가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고, 포틴저는 “스페인 독감과 똑같은 수준의 보건 비상사태에 직면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3월 중순 이후 한동안 매일 열었던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코로나19는 독감 같은 것”, “바이러스는 곧 사라질 것”이라며 전염병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 이에 대해 그는 3월 19일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그걸 낮춰 말하고 싶었다. 공포를 조장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후 미국 내 코로나19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날까지 누적 확진자는 600만명, 사망자는 19만명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지만 트럼프는 우드워드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내 잘못이 아니다. 중국이 망할 바이러스를 내보냈다”고 말했다.

WP는 이날 트럼프의 실제 인터뷰 녹취를 함께 공개했다. 이에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이 나라의 치어리더”라며 “국민들을 공포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간 출간된 폭로성 회고록들에 대해선 ‘일방적 거짓말’이라며 일관되게 의혹 자체를 부인해온 그였지만 실제 음성이 공개되자 해명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대선 경쟁자인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혐오스럽다. 트럼프가 국민을 속였다”며 정치 쟁점화를 시도했다.

우드워드가 이 같이 치명적인 정보를 알게 되고도 책을 내기 직전까지 이를 공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그가 언론인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이번 폭로는 언론 윤리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템플대 데이비드 보드먼 저널리즘학과장은 이날 트위터에 “미국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저서를 위해 정보 공개를 늦추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행위인가”라고 썼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