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출입제한에도 바둑판 들고 출근하는 고령층

입력 2020-09-10 16:10 수정 2020-09-10 21:33
1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에서 노인들이 턱까지 마스크를 내린 채 장기를 두고 있다. 최지웅 기자

태풍이 지나가고 맑은 하늘을 보인 1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한 담벼락. 30~40여명의 노인들이 원형 책상을 둘러싸고 장기와 바둑판을 벌이고 있었다.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노인들은 큰 소리로 훈수를 두기도 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장기를 두던 노인들은 마스크도 없이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박모(71)씨는 자택에서 탑골공원까지 바둑판을 챙겨들고 나오는 것이 일과가 됐다. 박씨는 “탑골공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폐쇄됐지만 다들 공원 담벼락 그늘에 터를 잡고 모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기 답답한 노인들이 사회복지시설 사용마저 제한되자 공원 근처에서 모임을 갖고 헛헛함을 달래고 있다는 것이다.

10일 서울 종묘 근처 담벼락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노인들이 낮술과 함께 장기를 즐기고 있다. 최지웅 기자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서울 도심 공원들이 속속 출입제한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 없는 고령층들은 되레 공원 근처에 무리를 지어 모이고 있었다. 이들은 “감염 우려는 전혀 없다”면서 거리두기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일부는 마스크조차 쓰지 않았다.

종묘 공원 담벼락에도 옹기종기 모여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부채를 흔들며 둘 차례를 기다리던 70대 A씨는 “여기에는 광화문 집회에 다녀온 사람이 없다. 우리들 중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감염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A씨의 말이 무색하게 전날 종로구 일대 공원을 청소하는 구청 소속 근로자 8명이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여전히 역학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근로자들이 공원 입구에 몰려있는 노인들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노인들이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는 정자 안에 들어가 장기를 두고 있다. 최지웅 기자

같은 날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공원에서는 ‘접근금지 테이프’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들이 테이프가 둘러쳐진 정자 안에 들어가 장기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아예 마스크를 챙겨오지 않은 듯 마스크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방역 당국은 최근 위중증환자 증가 추세를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 전체 코로나19 위중증환자 가운데 70대가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80대 이상과 60대 연령층이 잇고 있다.

공원 출입을 막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방역 수칙을 지키며 머물 곳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은 “노인들이 다단계 업체나 공원에 몰리는 만큼 복지시설 내 세세한 방역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