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아들 둔 나는 예비 살인자” 50대 가장 절규

입력 2020-09-10 10:18 수정 2020-09-10 10:50
국민청원 캡처, 국민일보 DB

“제가 제 손으로 제 아들을 죽이는 날이 오지 않도록, 남은 가족들이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게, 제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을 국가에서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8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저는 예비 살인자입니다-부디 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대책을 마련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저는 2000년생 21살 발달장애인을 아들로 두고 있는 50세 가장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이 정부 들어서 치매 국가책임제를 운영하며 노인들과 그 가족이 전부 떠안아야 했던 치매로 인한 고통과 부담을 정부에서 덜어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말 훌륭한 복지제도이며 찬사를 마지않습니다만 사실 치매보다 몇 배 더 힘든 것이 가족 중에 발달장애인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저희 애는 2000년생으로 만 1세 때부터 이상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병원부터 시설까지 증세 완화를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별 차도 없이 현재까지 집에서 돌보고 있다. 많은 발달장애인을 봐 왔으나 우리 애만큼 증세가 심한 애를 본 적이 없으며, 그나마 2018년 ‘TV조선’ 구호신호 시그널에서 방송된 ‘창고에 감금된 채 지내는 발달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 애도 그 정도, 아니 그 이상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또 “유리창, 문은 수십 번 깨졌으며 형광등, 가구, 가전제품 등 집어던지고 쳐서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이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툭하면 모든 걸 집어던지고 자해하거나 남을 공격합니다(먹는 거 이외엔 쾌락이 없어 먹기만 해서, 현재 175cm에 90㎏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애 엄마와 저는 몸에 깨물리거나 얻어맞은 상처가 많이 있고, 괴성에 난리를 하도 피워서 큰 애가 집에 있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인 작은 애는 제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감히 나오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청원인이 언급한 'TV조선' 구조구호 시그널 38회. 유튜브 캡처

청원인은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제가 2016년에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평일엔 엄마 혼자 애를 돌보는데 이것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너무 힘듭니다. 주말에는 제가 서울에 와서 토요일, 일요일 같이 돌보는데 정말 주말이 지옥 같습니다. 너무 힘들어서요”라며 “차에서도 공격성을 보여 앞자리와 뒷자리 사이 격벽을 설치했음에도 지붕이나 시트는 남아나지 않고 차 유리도 깨지고 차 문도 여러 번 깨졌습니다. 소변이나 대변을 차에서 봐서 시트도 여러 번 교체했고요”라고 어려움을 밝혔다.

청원인은 “(아들은) 하루에 2~3번은 공격적으로 변하는데 이때는 사람을 공격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자해행위를 해서 온 집안이 난리가 납니다. 자해행위도 심해져서 유리창에 머리 박다가 깨져서 애가 얼굴이나 몸에 자상도 많이 입었는데, 병원에서는 기본적으로 꿰매려고 해도 난리를 치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청원인은 “8월 17일 임시공휴일로 연휴가 되거나 명절 같은 연휴에는 정말 끔찍합니다. 코로나로 요즘엔 이마저 불안정하여, 수시로 학교나 시설이 문을 닫고 있으며 그것도 2년 뒤 학교의 직업과정이 끝나면 전혀 대책이 없어 눈앞이 깜깜합니다”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청원인은 장애인 생활시설도 알아봤으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아 입소기회도 거의 없으며 더군다나 공격적 성향이 있으면 더욱 거부당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나마 정신병원 폐쇄 병동은 가능하지만 좁은 독방에 가두는 거 이외엔 방치해서 오래 둘 수도 없다고 했다. 전에 아들이 한 달간 정신병원에 갔다 왔더니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고도 했다.

청원인은 “저희 가족은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보내고 있으나, 전혀 애에 대한 대책 없이 그나마 다니는 학교도 내년이면 끝나 더욱 암담합니다”라며 “만약 제가 몸에 이상이 있어 죽는 게 예정되었다거나, 아니면 훗날 내가 늙어 더 이상 애를 감당할 수 없을 때는 그나마 남은 가족을 위해 큰 애를 죽이고 저도 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고 글 제목의 이유를 언급했다.

청원인은 “정말 억울한 것은, 왜 정말 국가의 도움이 절실한 저희 같은 발달장애 가족에게 국가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장애인 활동 보조도 우리 애같이 힘든 경우엔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1시간 애를 보는 것도 지옥 같은데 저라도 그 정도 보수에는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청원인은 “제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을 만들어 주세요. 돈은 내라는 대로 내겠습니다. 하루 종일 안 봐줘도 좋습니다. 숨 쉴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 정말 국가시설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런 중증 발달장애인입니다. 제가 제 손으로 제 아들을 죽이는 날이 오지 않도록, 남은 가족들이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게, 제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을 국가에서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며 청원 글을 맺었다.

발달 장애인 아들을 둔 50대 가장의 힘겨운 심경을 담은 이 청원은 10일 오전 10시 기준 1만4426명의 청원 동의를 받았다.

송다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