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에 퍼지기 시작한 1월 말∼2월 초에 독감보다 훨씬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위험성을 무시해 국민을 오도하고 위협을 은폐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CNN방송이 다음 주 발간 예정인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에게 지난 2월 7일 “이것은 치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은 매우 까다로운 것이고 다루기 힘든(delicate) 것”이라며 “당신의 격렬한 독감보다도 더 치명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전날 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며 코로나19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도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밀정보 브리핑을 받았을 때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은 “코로나19가 대통령 임기 중 가장 큰 국가안보 위협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직면하는 가장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우드워드는 언급했다.
매슈 포틴저 당시 부보좌관도 “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1918년 유행성 독감과 비슷한 수준의 보건 비상사태에 직면한 것이 명백하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인터뷰에서도 우드워드에게 “아주 놀랍다”며 “코로나19는 독감보다 5배나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미국에서는 1월 26일 워싱턴주에서 첫 코로나19 증세 환자가 발생했다. 미 정부는 1월 31일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국을 여행한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했는데, 2월 29일 워싱턴주에서 미국 내 첫 사망자가 나왔다.
우드워드는 3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공황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위험을 경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젊은층의 감염 위험도 인정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오늘과 어제, 놀라운 사실이 몇 가지 나왔다. 나이 든 사람만이 아니다. 젊은이들도 많다”고 했다.
또 그는 4월 3일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바이러스의 위험을 여전히 경시하면서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틀 뒤인 5일 우드워드에게는 “끔찍한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4월 13일에는 “너무 쉽게 전염될 수 있다. 당신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드워드는 5월 인터뷰에선 ‘바이러스가 재임 중 가장 큰 국가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말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다”라며 말을 얼버무렸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7월 마지막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는 나와 상관없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건 중국이 망할 바이러스를 내보냈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책의 내용이 공개되자 “국민을 공포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책임을 또다시 중국에 돌렸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연방대법관 후보 목록을 발표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이 나라의 치어리더다.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싶지 않고 패닉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알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도리어 그는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해왔다. 우리가 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수백만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자찬했다.
반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미시간주 선거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그는 (코로나19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았고 고의로 경시했다. 더 나쁜 것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언론인이자 ‘워터게이트’ 특종기자로 유명한 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과 당국자들을 개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책을 집필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올해 7월 21일까지 18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는 문 뒤의 다이너마이트”라며 “그 직분(job)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책을 끝맺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