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오페라하우스 시즌 개막…프랑스, 거리두기 없이 극장 문 연다

입력 2020-09-10 06:00 수정 2020-09-10 08:44
프랑스 파리오페라하우스 바스티유 극장(왼쪽)과 그 내부의 작은 원형극장에서 9월 16일 열리는 개막 콘서트 안내 이미지 사진. 파리국립오페라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 예술계를 대표하는 파리 국립오페라하우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가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9월 개막을 결정했다. 원래 9월 시작되는 2020-2021시즌을 11월 개막으로 미룬다고 지난 6월 공식 발표했던 것을 번복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좌석 거리두기 없이도 공연장과 스포츠 경기장에 5000명까지 운집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와 같은 맥락이다.

지난 1일 파리 오페라하우스 총감독으로 취임한 알렉산더 네프는 오는 19일 극장의 공연을 재개한다고 최근 밝혔다. 앞서 11월 25일 파리국립오페라의 ‘라트라비아타’로 개막하다고 발표됐지만 19일 필립 조르당이 지휘하는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10월 5일 파리오페라발레의 ‘에투왈 갈라’ 등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시즌 개막을 갑자기 앞당겼기 때문인지 갈라 공연이나 콘서트 위주이며 그랜드 오페라로는 11월 ‘라트라비아타’가 첫번째다.

프랑스 정부는 코로나19가 장기화 속에 유럽에선 처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5000명 이하로 공연, 스포츠 등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공연장이 문을 닫거나 열더라도 좌석 거리두기로 객석의 절반도 채우지 못해 생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의 이번 방침은 전 세계 공연계의 주목을 모은다. 다만 마스크 착용은 필수이며, 보건당국의 기준에 따라 위험지역인 ‘핫스팟’, 즉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 지역의 행사는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용된다. 현재 프랑스 전국 101개 행정단위 중 파리와 마르세유를 포함한 21개 지역이 위험 지역인 ‘핫스팟’이다. 다만 5000명 이상의 행사는 최소 11월 말까지 계속 금지된다.

프랑스 정부가 이 같은 방침을 결정한 것은 코로나19와 싸우면서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4개월 미뤘다가 오는 22일 개막하는 프랑스 테니스 오픈 역시 관객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1개 코트당 최대 5000명이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프랑스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어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잡히지 않자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프랑스에선 최근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7000~8000명대로 3월 말 코로나 발생 이후 일일 최다를 경신할 만큼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오페라하우스 가르니에 극장(왼쪽)과 그곳에서 공연될 예정인 파리오페라발레의 '에투왈 갈라' 공연 안내 이미지 사진. 파리국립오페라 홈페이지 캡처

한편 코로나의 장기화 속에 공연산업의 생존이 벼랑끝에 놓임에 따라 공연장 내 거리두기 문제가 세계 각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좌석 거리두기로는 공연을 올릴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연 산업의 중심인 영국에선 극장 재개와 좌석 거리두기 문제로 논쟁이 뜨겁다. 이와 관련 정부가 구성한 위원회 역시 이 문제를 논의중이지만 뾰족한 답을 못내고 있다. 올리버 다우든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올리버 다우든은 최근 인터뷰에서 “영국 공연장들이 12월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두 문을 열기를 희망한다”고 했지만 공연계는 좌석 거리두기를 적용해 공연장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K방역’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한국 공연계에서도 코로나 확진자 급증에 따라 국공립 극장에 지난 16일부터 민간 극장에도 좌석 거리두기가 의무 적용되면서 공연의 연기나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취소나 연기가 어려운 경우엔 좌석 거리두기에 따른 티켓 재예매를 하는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엔 아예 중단됐다.

이와 관련 유럽에서는 코로나 장기화에 맞춰 공연 문화와 시스템을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독일에서 코로나19 여파 속 콘서트의 지속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 행해진 것은 대표적이다. 라이프치히의 할레 대학 연구진은 최근 18∼50세의 자원봉사자 1500명을 모집해 싱어송라이터 팀 벤츠코의 콘서트를 각각 다른 조건에서 세 차례 진행했다. 코로나19 이전처럼 아무런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 팬데믹 이후 방역 수준을 높였지만 거리두기는 강화하지 않은 상황, 입장객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1.5m 이상 간격으로 거리두기를 강화한 상황이 설정됐다. 참가자 모두는 사전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코로나19 테스트를 받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추적 장치를 수령했다.

연구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공연장에 미치는 위험을 예측하기 위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이런 공연이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킬 수 있을지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가 가을쯤 나올 예정인 가운데, 공연장 재개와 거리두기를 둘러싼 갈등은 코로나가 지속되는 한 쉽게 결론나지 못할 전망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