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OS생명의전화에 술에 취한 30대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죽으려고 마음먹었다가 전화기를 들었다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비극이 된 자신의 처지를 한참동안 토로했다. 회사가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돼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실직자가 됐다. 빚이 늘었고 스트레스가 심해져 대인관계가 흔들렸다. 전염병 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기존 사회관계망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는 전화기를 들기 전에도 자해와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집이 압류에 들어갔고, 직원들 월급도 못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직원도 힘들고, 저도 힘들고, 모든 사람이 힘들다”는 호소를 반복했다고 한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며칠 전 음독자살을 시도한 20대가 실려 왔다. 한 대부업체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해고됐다. 이후에도 취업이 안 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아버지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나도 잘 해보려는 데 안 되는 것”이라고 항변하던 어느 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는 회복 진료 때 “개인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제한된 상태에서 해고까지 당하자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을 받았고, 가까운 가족들마저 무시하고 비난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 놨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블루가 원인이 돼 새롭게 자살 고위험군으로 편입된 사례들이다.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정서적 불안의 심화, 경기침체로 인한 경제난 가중, 사회관계망 단절로 인한 치유 기제 약화 등 문제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블루’가 무서운 건 이처럼 그 여파가 자살자들의 주요 동기로 지목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와 경제생활 문제를 한꺼번에 건드리고 있다는 데 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10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스트레스 등 임팩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장 활동가들은 또 다른 문제를 지목했다. 코로나19가 자살 예방을 위한 위기군 관리시스템을 헐겁게 만들어 제대로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면을 강조한 방역 체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위기군이 늘어나는데, 대면 위주의 기존 시스템은 이들에게 닿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위험군이 먼저 쓰러졌다
고민영(가명·38)씨는 얼마 전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을 때 전염병의 진짜 위험성을 실감했다. 그의 가족은 3년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줄곧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살 고위험군이 된 고씨 가족은 심리치료를 받으며 삶의 의지를 겨우 붙들고 있었다.그런데 전염병 사태가 터졌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강권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지역감염이 심각해지면서 대면 대신 전화 상담을 주로 받았다. 친구를 만나 적적함을 달랬던 노인복지센터와 성당도 문을 닫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끊겼고, 유일한 치료였던 상담도 뜸해진 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머니와의 사별 후유증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있던 아버지 심리상태는 곤두박질쳤고, 알코올 의존이 심해졌다. 전염병 우려로 가족들도 전화 안부밖에 묻지 못하던 때, 아버지는 술을 마신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다행히 빨리 발견돼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 가족들은 지금도 조마조마하다.
“아버지가 좀 괜찮아 질만 할 때 코로나19가 터졌어요. 그나마 손자들 챙기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좋아지려던 차에 갑자기 모든 사회관계가 차단돼 버리니까….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셨던 것 같아요.”
고씨처럼 가족을 자살로 잃은 유족들은 자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8배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체계가 상담과 자조모임 등인데 코로나19 여파가 여기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고씨도 고위험군 관리대상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신마저 무너지면 안 되겠기에 마음을 다독이려 병원치료와 자조모임에 집중했는데, 그 사이 생계가 막막해졌다. 프리랜서 콘텐츠 제작자인 그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불안이 심해져 1년 동안 아예 일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생활전선에 복귀했지만 이번엔 코로나19가 터졌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었던 일들이 줄줄이 연기·취소됐다. 계획된 수입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그녀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고 있다.
“통신비나 집세 같은 고정 지출이 있으니까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죠. 저는 신용회복도 하고 있는 상태인데 지금 코로나19로 잠깐 상환이 중단된 상태거든요. 그러니 그동안 열심히 갚을 준비를 해둬야 하는데…. 그나마 저는 이렇게라도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안 되는 분이 있잖아요. 무급휴직이나 실직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억누르다가 나중에 터질까봐 걱정이에요.”
드러나지 않은 위기군
고씨는 기존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 구멍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고위험군에 새로 편입되는 사람들 역시 크게 늘고 있다. 실제 종합병원 정신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최근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사회생활 범위가 더욱 좁아지면서 ‘외롭다’ ‘잠이 안 온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아이들과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 주부들의 경우, 자식에게 불필요하게 짜증을 내는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다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생명의전화에 걸려온 상담자들의 고민 유형 역시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상담자들이 털어 놓은 문제 유형은 1위가 가족, 2위가 대인관계와 인생, 3위가 진로와 학업 등이었는데 올해는 순서가 인생, 경제, 정신·신체건강, 대인관계로 바뀌었다. 코로나19 여파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담 유형들이 상위권에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고위험군을 발굴해야할 기존 사회 시스템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다. 경북의 한 지자체에서는 자살예방 최전선에 있는 생명의전화가 4개월 넘게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상담소를 모두 닫으라는 명령이 떨어져 2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낮에만 일부 전화 상담을 받았다. 자원봉사 상담원으로 운영되는 생명의 전화는 24시간 상담이 이뤄져 왔었다. 해당 센터 관계자는 “운영을 재개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상담사 선생님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수치상으로는 상담건수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며 “연세 많은 분들은 외출이 안 돼 답답하고 외롭다는 호소들을 하신다”고 했다.
당사자들끼리 위로와 공감을 나눠왔던 자조모임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고씨가 참여하던 자조모임은 중단됐다. 유족들은 자조모임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안을 얻는데 이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고씨는 “경제적으로 힘든데 정신적으로도 고립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A지역 자조모임 관계자는 “참석자들은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한데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 하니 좋다’고 말씀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을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오면 이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은 지난 3일 열린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자살 문제를 언급하며 “가장 외로운 집단과 실직으로 인한 영향이 큰 집단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빠르게 추적하고 확산을 막았기 때문 아니냐”며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부정적 감정은 전파되고, 그냥 두면 더 심해질 수 있다. 빨리 추적해서 막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리방역 대책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강력한 감염병 확산 방지 대책과 병행할 수 있는 심리방역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위기군의 경우 자살 위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신규 위기군의 경우 발굴이 더뎌 시차를 두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정신건강서비스가 잘 제공되면 자살률에 큰 영향이 없는데 현재는 (전염병) 재난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 제공이 안 되면 추후 자살이 늘어난다는 보고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유명순 교수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형식적 상담은 도움이 안 된다”며 “보통의 사람이 겪고 있는, 혹은 과거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 새롭게 경험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여기에 근거한 실질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택트’ 상담이 불가피하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은 “비대면 서비스가 깊이 있는 상담에서 가벼운 안부 확인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 유관기관에서도 심리 문제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연계해 사각지대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우 센터장은 “우울과 절망에 빠지거나 고립된 상태에서 정보에서 소외되면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모르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인에게 위험신호를 알렸거나 전화 등을 통해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가능한 지원과 치료를 연계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코로나 블루 또 다른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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