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중단한 의료계가 언제든 휴진을 재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있다. ‘의대생 구제’ 등을 구실로 국민 건강권을 걸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의료계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는 9일 의사 국가고시(국시)와 관련해 입장을 재차 명확히 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의대생들 스스로 시험을 거부하고 있으며 응시 의향을 공개적으로 전달받은 적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기회를 논하는 것 자체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앞서 의사단체들은 국시 거부 의대생들이 피해를 보면 재파업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의협) 부회장은 전날 “한 명의 의대생이라도 피해자가 나온다면 총궐기에 나설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대전협 비대위), 대한개원의협의회 등도 유사한 입장을 표명했다.
일부 여당 인사의 발언이 재파업을 언급하는 구실이 됐다. 의협은 전날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합의 내용을 부정하는 발언이 계속된다면 합의를 ‘원점 재검토’ 또는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 의원은 같은 날 인터뷰에서 “10여년간 연구와 토론 끝에 결정한 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은 어느 정부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파업 메시지를 지켜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박민숙 보건의료산업노조 부위원장은 “국민을 볼모로 잡은 인질극”이라며 “의사라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당사자인 의대생 일부조차 “국시 연기를 바라고 단체행동에 돌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응했다.
다수 의대생들은 국시 연기 등과 무관하게 집단행동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이 전국 의대생 1만 586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81.22%가 집단행동 유지에 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요구조건이 명확하지 않고 명분과 실리 모두 부족하다는 내부 목소리도 나온다. 충청권 의대 본과 4학년 A씨(25)는 “4대 정책 철회, 의료 수가 인상, 기피과 처우 개선 등 요구가 중구난방”이라며 “갑작스러운 의정합의로 아노미 상태에 빠진 듯하다”고 말했다.
일부 의대에서는 단체행동 중단 여론도 제기되고 있다. 전날 서울대 의대 학생회가 본과 4학년을 상대로 단체행동 지속 여부를 물은 결과 81%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서울권 의대에서도 ‘전공의 파업과 무관하게 단체행동을 지속하겠다’는 의견이 4분의 1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적 비용과 의대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의사단체 등이 중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현 상황의 1차적 책임은 단체행동을 지지·독려했던 선배 의사들에게 있다”며 “정부에 ‘구제’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시 재응시를 신청한 서울 소재 의대 본과 4학년 김모(27)씨 역시 “의협은 이미 신뢰를 잃었기에 전공의들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